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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아롱 산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詩가 있는 풍경 29] 신대철 시인의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죽은 사람이 살 다간 南向을 묻기 위해
사람들은 앞산에 모여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소년들은 잎 피는 소리에 취해 산 아래로 천 개의 시냇물을 띄웁니다. 아롱아롱 산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흰나비를 잡으로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저 아래 저 아래 개나리꽃을 피우며 활찍 핀 누가 사는지?

조금씩 햇빛은 물살에 깎이어 갑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리도 깎이어 물 밑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로 부숴집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흰 모래 사이 피라미는 거슬러오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그대를 위해 사람들은 앞산 양지 쪽에 모여 있습니다.


[죽음]

3년전, 나라에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슬픔은 삽시간에 다가와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번져갔습니다.
하지만 마음뿐, 다들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물살 때문에, 시계(視界) 때문에, 장비 때문에...
그 긴 무력감이 어찌 학부모들만의 것이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을 안타까운 시간들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그 바다속 큰 슬픔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깜깜한 선실속에 갖혀 3년을 보내고서야
허물을 벗는 나비들처럼 그들은 힘겹게 뭍에 올랐습니다.
죽은 아이들이 살다 간 짧은 시간을 묻기 위해
사람들이 다시 팽목항에 모였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은 하얗게 흰나비로 내려 앉았고,
먼 바다에선 조금씩 햇빛이 
물살에 깎이고 있었습니다.


신대철 시인은 194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고, 연세대 국문과를 나왔습니다.
1968년에 시 '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저녁까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이래 꾸준히 '자연속에서 현대인의 내면정황을 포착하는 유니크한 시세계'를 선보여 왔습니다.
이 시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는 선생이 1977년에 펴낸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린 작품입니다. 마치 40년 후의 4월을 예언한 것처럼 가슴에 와닿는군요.

아래는 같은 시집에 들어 있는 '강물이 될 때까지' 전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간데 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