城山浦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바다]
가끔씩 바다를 보러 바다로 갑니다.
인천 월미도도 영종도도 가긴 하지만
거긴 진짜 바다 같지 않습니다.
속초엘 가면 성난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속을 뒤집어 허연 뱃가죽을 드러내는 바다,
화를 삭이듯 낮게 으르렁 대는 바다,
물보라를 내쳐 구경꾼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바다.
성산포의 바다는 거기에 비하면
무척이나 얌전합니다.
'원래 바다는 이러했노라' 설교라도 하듯
미동도 없이 깊고 푸른 물비늘만 반짝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면 나조차 쪽빛에 물이 듭니다
눈과 두 손과 그리고 마침내 가슴 가득
푸른빛을 채우고 나면
그대로 내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내가 됩니다.
이생진 시인의 '바다를 본다'는 그런 물아일체의 경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성산포에선 모두가 바다이고, 바다는 곧 그들 모두입니다.
교장 선생도, 지서장도, 풀 뜯는 소도, 하다못해 제 구멍을 들락거리는 들쥐까지도 짬을 내어 바다를 봅니다. 아내랑 나간 바다가 돌아오질 않고, 다락에서 먹을 것을 찾던 손이 풍덩 바다로 빠집니다.
이런 낙원이 또 있을까요?
이생진 시인은 섬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매해 여름이면 취재를 하듯 섬을 쏘다녔습니다. '바다를 본다'는 선생이 1975년 여름에 성산포에서 쓴 시로, 1987년 펴낸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실려 있습니다. 올해로 미수(88세)를 맞은 시인은 여전히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아래는 '시인이 보내온 편지'(1991년 刊)에 실린 선생의 짧은 시 '널 만나고부터' 전문.
널 만나고부터
어두운 길을 등불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없이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널 만나고부터는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