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릭,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대 모두 이
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
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은 꽃 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
은 반짝이고, 아지랭이고 싶은 놈은 아지랭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자유]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해서 은분홍으로 흩날리다 사라집니다.
봄은 가늘게 뿌리는 비나 엷은 바람 또는 들판 위로 피어오르는 흐릿한 아지랭이로 기억됩니다.
봄은 반팔 티셔츠를 옷장 속으로 불러 오고, 봄은 때론
그 발산할 데 없이 가슴 조린 젊은 날의 춘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파트 단지에 벗꽃이 며칠째 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눈처럼 꽃잎이 쌓여 차들이 지날 때마다 한번씩 크게 들썩입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벗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작은 여자아이의 빰과 이마엔 동그란 꽃잎이 하나씩 내려 앉아 하얂게 반짝입니다.
황송하게도 그걸 밟고 집으로 가고, 그걸 밟고 밖으로 나갑니다.
지난번 다녀온 산은 온통 진달래 천지였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들어선 등산로 입구에서 부터 정상 부근,
숨이 턱에 차게 오르다 무심히 던진 눈길 속에도 어김없이 진달래는 붉게 피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이군요.
아~ 그 상큼하게 부드러운 바람결을 기억하시는지요. 자유입니다.
그걸 누가 뭐라고 부른들 자유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아래는 오규원 시인의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문학과 지상사, 1987년)에 함께 실린 짧은 시 '나무에게' 전문.
물의 눈인 꽃과
물의 손인 잎사귀와
물의 영혼인 그림자와
나무여
너는 불의 꿈인 꽃과
이 지구의 춤인 바람과
오늘은 어디에서 만나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