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상근심사위원의 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7층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조금은 어두운 조명아래 ‘김수남’이라는 명패만이 그의 방임을 알아볼 수 있었고, 딱딱한 글씨체로 쓰여진 ‘재실’이라는 단어가 그가 근무하고 있음을 가늠케 했다.
치과대학병원, 종합병원, 치과대학까지 196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후 40여년이 넘게 치과의사로서 진료와 후학양성에 매진한 그가 서초동 심평원 7층에 자리를 튼지 6년째.
보험청구 심사위원 치과분야 수장인 그는 종합병원에서의 행정 업무 그리고 치과대학에서 학과 개설까지 현재의 업무에 적임자로 나무랄 것 데 없는 인물인 듯 보였다.
2009년 첫 부임 당시 만해도 지금까지 상근심사위원직을 수행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치과의사라는 최고의 경험으로 치과에서 청구하는 보험 청구를 다른 이들보다는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 현재의 업무에 만족하고 또 감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료의 타당성을 부여해야하는 일도 많아서 지금도 치과 진료 트렌드를 읽히려 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김 심사위원은 심평원에 근무하는 치과 부문 직원들과 치과 진료 트렌드를 익히기 무던히 노력 하고 있다. 치과대학을 방문해 술식에 대한 강연을 듣고 진료에 사용된 재료 등을 파악해 치과에서 보험 청구를 하는 이유와 보험 보장범위를 연구하는 기초로 활용하고 있다고.
“치과의사로서 보험심상청구에 타당성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렌드는 말그대로 매일매일 변해간다. 치과 재료, 술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때 상금심사위원으로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때문에 시간이 내서 심평원 치과 분야 담당자들과 치과대학 등으로 임상 세미나를 찾아 사용되는 재료와 술식에 대해 공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임상 세미나를 찾는 것은 그가 심평원 상근심사위원으로 위촉됐을 때부터 체계를 다진 것이며 중요한 업무로 여기고 있는 부분이다.
그에게 진료라는 일상에서 벗어난 지 수년째이지만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 분야가 있는지 물었더니, 그가 ‘줄기세포’ 연구가 관심이 많다고 답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업무가 마무리되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면 치과의사로서 마지막까지 연구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목표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김수남 심사위원의 치과의사 역할은 봉사활동으로도 이어진다.
27년 이상 진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1986년 영등포 길거리 여성 부랑자를 수용하던 영보자애원에서 진료봉사를 시작했다.
40여명 남짓 구성된 진료봉사단은 순번을 정하고 팀을 정해 돌아가며 영보자애원을 찾고 있다. 많은 지원비가 있다면 보다 많은 그리고 보다 다양한 진료를 해줄 수 있을 텐데 비용에 한계가 있어서 늘 마음이 쓰였다는 그. 다행히 얼마 전부터 보철 진료에 대한 지원과 재능기부 등으로 진료 할 수 없었던 보철치료 그리고 덴처까지 진료의 영역을 넓혔다.
치과의사라면 재능기부의 형태로 실천할 수 있는 진료봉사에 대해 김 의원도 할 말이 많다.
그는 “영보자애원 뿐만 아니라 사회 소외계층은 여전히 치과진료에 대한 니즈가 높다. 지금도 많은 치과의사들이 진료봉사에 앞장서고는 있지만 젊은 치과의사들의 참여가 부족하다. 어떤 방법으로 젊은 치과의사들을 끌어 들이자라고 제안은 어렵지만 이런 자리를 빌어서라도 젊은 치과의사들이 해야 할일이 많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며 선배치과의사로서 의견을 피력한다.
아직까지 열정적으로 치과 진료와 연구 분야에 관심을 쏟는 그가 불연 듯 어떤 치과의사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했다.
“‘무엇이든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한 사람 이었다’라는 말만 들으면 됩니다. 가진 것이 많고 지식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했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임하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여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배 치과의사들이 배워야만 하는 모습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