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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4주년.. '그때 그곳의 사람들'

[데스크 칼럼] 비행기 테러를 보는 공포

 

축구선수들은 프리킥으로부터 골을 지키기 위해 벽을 쌓을 때 얼굴을 가리는 대신 두 손으로 국부를 단단히 가립니다. 몸을 비트는 동작이 머리를 낮추는 동작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므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의 직격에 가장 취약한 부위가 바로 몸 중앙의 국부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생후 4개월이 지나면 위험이 돌발적으로 발생했을 때 특징적인 경악패턴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은 거의 순간적인 반응인데, 이 경악패턴을 잡기 위해선 사진을 찍는 사람의 등 뒤에서 예고 없이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사람이라는 동물이 뜻하지 않은 위험 앞에서 어떻게 경악하는지를 고스란히 필름에 담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얼마전 미국에선 시늉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생방송 인터뷰 중인 기자를 옛 동료가 권총으로 쐈고, 희생자가 경악하는 장면, 도망가는 장면이 그대로 미국의 아침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경악하는 자세는 언제나 거의 똑같습니다. 입은 크게 벌리고, 머리와 목을 앞으로 내밀고, 어깨는 움추려 앞으로 숙이고, 팔을 구부리고 주먹은 쥐며,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여 복부를 수축시킨 채 무릎은 약간 굽힙니다. 앞에서 예로 든 축구선수들의 경우, 예고된 위험임에도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볼 앞에서 전형적인 ‘경악 패턴’을 보여줍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표정을 긴장시키며 무릎을 약간 굽히는 자세가 그것입니다.

 

그저께는 9.11테러 14주기였습니다. 당시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한 비행기를 마주 하면서 건물 안의 사람들이 느꼈을 찰나의 공포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이제 막 커피 한잔씩을 뽑아 들고 몇몇은 창가에서 뉴욕의 아침을 내려다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 멀리서 비행기 한 대가 건물을 향해 날아들고.., 짧은 순간 사람들은 '저 비행기가 저러다 건물을 비켜가겠거니..'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더미 같은 보잉기가 굉음을 내며 곧장 코앞까지 날아들었을 때 그들이 느꼈을 공포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요. 사람이 몇이나 죽고 몇이나 다쳤는지 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었을 짧지만 엄청난 공포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쩌면 테러는 살상이 목적이 아니라 발원지를 중심으로 지진처럼 번져 갈 생물학적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습관적으로 팔을 올리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 인간만이 가진 본능적인 자기 보호 동작입니다. 두려움이나 고통을 인식하고 방어체제를 갖추도록 지시하는 중앙제어장치가 곧 인간의 뇌이지만, 타고난 보호장치라고는 단단한 두개골과 눈 주위에 있는 몇개의 돌기, 눈썹이 있는 융기 부분의 뼈, 그리고 광대뼈와 코뼈가 전부입니다. 이 유약한 보호장구로 단단한 무엇과 갑자기 맞닥뜨렸을 때 공포를 느끼는 건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하물며 집채같은 비행기라니.. 창을 부서고 돌진하는 비행기를 향해 나약하기만 한 인간이란 동물의 특징적 경악 패턴을 지은 채 비명을 외쳐 댔을 희생자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의 표현대로 미국은 진주만 이래 외세로부터 공격을 받은 적이 이전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세계의 경찰이 되어 지구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기는 했어도, 자국의 중심이 이렇듯 처참히 유린되리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만큼 당시 미국 사회는 충격과 공포와 분노가 덩달아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성조기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강한 미국의 본때를 보이자는 함성이 이성적 대처를 호소하는 모기소리를 삼켜 버렸습니다. 미국민이 당한 공포를 되갚아 주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돼, 이후 미국은 테러의 배후국으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해 과도정부를 새우더니 2011년엔 마침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그라운드 제로에 새 건물이 올라가고, 그렇게 9.11은 잊혀가지만 종교간, 국가간, 개인간의 크고작은 테러는 끊이지 않고 여전히 세계인들을 괴롭힙니다. 14년전의 그 끔찍한 참사에서도 인류는 전혀 배운 것이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