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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詩와 病苦 그리고 '나비의 꿈'

[詩가 있는 풍경 14] 김관식 '莊子와 나비'

 

莊子와 나비


내 마음의 공허한 벌판을
네가 측량하여 표(標)ㅅ말을 세워
빨간 기(旗)를 꽂고
자국마다 오뇌(懊惱)의 씨앗을 심고
그리고 돌아간 뒤

 

노루 발목을 구워서 문질러도
낫지 않는 슬픈 생채기!
앓은 짐승처럼 벙어리 되어
담즙(膽汁)보다 쓴 잔(盞)을 소리 없이 마시노니

 

새여.
새벽 묏부리에 쇠잔(衰殘)한 달빛이 찰 때
각혈(咯血)하다 쓰러져 돌아누운 새여.
간밤 비바람에 생으로 떨려
점점이 어룽진 피의 낙하(落下)

 

蔣生曉夢迷蝴蝶 (장생효몽미호접)
望帝春心託杜鵑 (망제춘심탁두견)

 

정수머리에 살며시 나와
불을 켜 들고
가리마 사이 푸른 오솔길을 밟아
조용히 나들이 간 영혼(靈魂)을 불러

나도 언제는 한번
나비가 되어 보나 하고
훨훨 날아보는
봄밤의 꿈.

 

[춘몽]

오래된 그의 시집을 꺼내 읽다 문득 이 시가 눈에 들었습니다.

생전 그가 만들어 낸 숱한 일화들과 '훨훨 날아보는 나비의 꿈'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만, 사실 축약해서 산 듯한 그의 짧은 생애 가운데 이 '나비의 꿈'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김관식 시인은 열여덟에 첫 시집(낙화집)을 냈습니다. 열아홉에 육당에게 동양학을 사사했고, 스무살 되던 해에 서울공고 교사가 되더니 그 해 미당의 처제와 결혼을 합니다.

스물하나인 55년에 현대문학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그 해에 서울상고로 근무지를 옮겼고, 스물넷이 되던 58년에는 세계일보 논설위원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리고 불과 스물여섯 나이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장면과 맞붙었지만, 겨우 282표를 얻는데 그치고 말죠.

그리곤 그는 술에 묻혀 삽니다. 60년부터 김관식 시인은 하는 일 없이 술병(病)에 발이 묶인 채 세검정 산비탈 위 자신의 집에서 '나비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는 70년 8월 30일, 서른여섯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시는 요절한 천재 시인 김관식이 술과 시와 병고로 시간을 보내던 1965년 무렵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당시의 그에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노닐던 꿈에서 깨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겠다'고 한 장자의 호접몽속 나비는 아마 갇힌 현실을 초월하는 '자유'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아래는 76년도에 펴낸 그의 유고집 '다시 광야에서'에 함께 실린 짧은 시 '居山好 1' 전문.


 

山에 가 살래.
팔밭을 일궈 곡식도 심구고
질그릇이나 구워 먹고
가끔, 날씨 청명하면 동해에 나가
물고기 몇 놈 데리고 오고
작록(爵祿)도 싫으니 山에 가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