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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모래대로 송아지는 송아지대로

[시가 있는 풍경 8] 이기철 시인의 ‘고향’

 

고향

 

신발을 벗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내(川)를 건너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불과 열집 안팎의 촌락은 봄이면 화사했다.

복숭아꽃이 바람에 떨어져도 아무도 알은 채를 안했다.

아쉽다든지 안타깝다든지.

양달에서는 작년처럼, 너무도 작년처럼

삭은 가랑잎을 뚫고 씀바귀 잎새가 새로 돋고

두엄 더미엔 자루가 부러진 쇠스랑 하나가

버려진 듯 꽂혀 있다.

발을 닦으며 바라보면

모래는 모래대로 송아지는 송아지대로

모두 제 생각에만 골똘했다.

바람도 그랬다.

 

 

故鄕
떠나온 곳이 가장 그리워지는 계절은 봄이다.
꽃이 피고 지고 또 피기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의 중간 중간,
마치 막 그곳에서 옮겨 온 것 같은 생생한 화상들이 봄볕을 타고
떠난 자의 기억 속을 헤집는다.

이기철 시인의 시선집 ‘청산행’은 1982년에 초판을 찍었다.
시인은 그 속에 시대와는 무관하게,
연민에 가깝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옛날의 금잔디’ ‘빈 의자’ ‘월동엽서’ 같은...

같은 시집에 실린 선생의 시 ‘슬픔에 대하여’ 전문.

 

여우야 얼마나 슬프냐, 다람쥐야 너는 얼마나 슬프냐
말똥구리 사마귀 개미야 너는 얼마나 슬프냐
파리 모기 귀뚜라미 잠자리야 얼마나 슬프냐
한밤내 듣다가 아침에 멈춘 빗방울
울타릿가 홰나무 잎새를 흔들던 실바람아
너는 얼마나 슬프냐
긴 밤을 창가에 와 부서지던 별빛
지난 겨울 내리자 녹던 싸락눈아 얼마나 슬프냐
티눈아 먼지야 너는 얼마나 슬프냐
그러나 우리에게 더 큰 슬픔은 있다.
겨울엔 싸리꽃 지고
봄 오면 잔풀 돋는 우리나라
상처 난 江原道를 품에 안고
기슭엔 게를 치는 섬 많은 韓半島
이 方言 이 피부, 나면서 낫질 배운
베옷 입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