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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칼럼

돈 주고 시를 내걸었다고?

[신아연의 공감]- <14>

 

출발지 역이나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스크린 도어의 시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고판에 눈이 가듯, 꼼꼼히 읽지는 않아도 무심결에 쳐다보게 되는 것이지요.

 

2년 전 자유칼럼에 임철순 님이 쓴 <지하철은 시집입니다>에 의하면 서울 지하철 시는 2008년에 처음 등장했고 스크린 도어 설치 확대와 더불어 2011년에는 293개 전체 역에 4,500여 편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임철순 님은 스크린 도어의 투명 유리판에 붙여진 시는 시가 흐르는 서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의 지하철역은 시집입니다'라는 말로 일상 속의 문화향유 정책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가 다 만족스러울 만큼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늘 이용하는 노선이나 역이 아닌 곳에 가면 일부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스크린 도어를 훑어볼 만큼 나도 지하철 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글에는 또 시 선정은 어떻게, 누가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시가 시인협회 등 문인 단체에 의뢰해 시를 추천 받아 편당 5만원의 작품 사용료도 지급하지만 자기 시가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례비를 마다하는 경우도 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 응모전도 곁들이고 있다니 서울 지하철 시집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운 부피로 무르익어갈 것입니다.

 

지하철이 시민의 발, 시민의 소유이듯 역 공간에 시민의 시가 소개되는 것은 시 수준의 높낮이나 작품성을 떠나 의미 있는 일입니다. 생업에 부대낀 고단한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 어드메에 나의 시가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따스한 위로이자 소시민적 행복일 테니까요. 한 줌 시가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깟 밥 한 숟가락 덜 먹어도 날아갈 듯 가뿐한 기운을 주는 것이 시의 힘이요, 글의 힘이 아닌가요.

 

서울에 와서 지하철 시를 접하니 얼마 전 시드니 동포사회에서 시를 쓰는 분 하나가 서울 지하철에 자기 시가 걸려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놀랍고 부러운 마음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는데 정작 본인은 돈 주면 다 해 주는 데요, .”하면서 천연덕스런 대꾸를 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더욱 놀랍고 이번에는 두려운마음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글쎄, 돈을 주면 알아서 해 준다구요.”

 

도대체 누구에게, 얼마나 주면 알아서 해주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더했다간 그분보다 제가 더 민망해질 것 같아 거기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다만 시를 쓴 이에게서 돈을 받고 서울지하철 역에 게시할 시를 추천해준 사람이 있나 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시인이니 수필가니 하는 사람 중에 문예지를 발간하는 곳이나 문인단체에 일정한 액수의 돈을 주고 타이틀을 산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은 문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사람도 한국에서 등단을 조건으로 자신의 시가 실린 문예지의 일정량을 구매했으며 이후 시집을 낼 때도 등단을 시켜 준 문예지의 지정 출판사에서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시드니의 한국 문인들 몇몇은 같은 곳에서 등단하고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냈습니다. 물론 자비로 말입니다.

 

게다가 필자 돈으로 낸 책인데도 판매 수익은 출판사가 취하고 일반 독자들에게 팔릴 가망도 없으면서 재판을 찍자며 필자에게 재차 인쇄비를 요구한다는데,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다 돈도 줍는 격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등단이나 출판 행태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래된 병이자 자기들끼리의 일이라 해도 지하철 시선정에까지 돈이 개입됐다는 사실은 그네들의 일로만 넘어가지질 않습니다.

 

지하철은 시민의 몫이자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균열, 희미한 상흔, 미미한 불순물이라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런 일이 한 건이라도 있었다는 게 매우 괘씸하고 불쾌하고 속이 상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하철 시에 대한 모독이자 오염 행위입니다.

 

비록 시어가 서툴고 유치하더라도 내 가족, 내 이웃, 우리 동네, 나아가 같은 서울 시민이 쓴 시라는 것에서 즐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임철순 님이 말한 시가 흐르는 서울’ ‘일상 속의 문화향유 정책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될 테니 말입니다.

 

 

필자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로 이민, 호주 동아일보 기자, 호주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 www.bistromeme.com 을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학교, 부산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글 쓰는 여자 밥 짖는 여자>,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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