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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칼럼

'얼'빠진 '을'의 나라

[신아연의 공감]-⑨

 
요즘 한국은 난데없이 ‘갑을 관계’ 공방이 한창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더니 갑의 횡포에 숨소리도 못 내고 살아온 을이 생존의 올가미에 걸려 쌓이고 쌓였던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그냥 갑도 아닌 ‘슈퍼 갑’이 존재한다니, 그로 인해 자살까지 하게 된다니 한국 사회가 그 정도까지 정도(正道)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정도를 지나 기괴스럽기조차 합니다.

3년 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칼럼에 ‘갑도 을도 아닌 것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말장난을 한 것 같아 실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그때 “군림하고 군림당하는, 지배하고 복종하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구분되는 현실 구조 속에서도 한 가지 공평한 것은 갑도 을도 삶이 혼돈스럽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란 점입니다. 경쟁과 욕망으로 점철된 현실의 삶에만 코 박고 있는 한, 한순간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둘은 공평하게 불행하며, 기쁨은 찰나적일 뿐, 허다한 시간이 공허와 허무로 메워지는 것도 똑같습니다. 반짝 의욕이 생기는듯 하다가 이내 좌절의 나락에서 뒹구는 느낌도 갑과 을에 구분 없이 찾아드는 쓰라린 감정일 것입니다.”라는 그럴듯한 말을 했는데, 인정사정없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갑에게 가없는 생계의 위협과 인격적 모독을 당하는 을의 처지에선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거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못된 시어미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못된 시어미가 된다고 하듯이, 갑과 을의 양상이 바뀐다거나 어제까지는 을이었다가 오늘 갑이 된다면 그간 당한 못된 짓을 그대로 되돌려 주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쩌면 더 가혹하고 더 잔인하게 상대의 목을 죌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엔 한국 사회의 근원적이며 노골적인 ‘갑을 관계’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파생한 ‘사람과 물질의 기형적 관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에 5년 만에 대면한 한국은 물질이 ‘갑’이고 사람이 ‘을’인 괴물 같은 세상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례로 이번 한국 방문 중에 ‘착한 가격’ ‘착한 점심’ ‘착한 고기’ 따위로 사물을 인격화하고, 물건을 칭할 때 “얘는 얼마고” “쟤는 어떻고”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반대로 연예인 등 선망의 대상이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로 사람을 더이상 거래되지 않는 상품 취급하는 것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파괴적이고 혼란스런 언어 개념이 한둘이 아닐진대 초콜릿도 ‘사랑하고’ 핸드폰도 ‘사랑하고 ’ 개도 ‘사랑하면서’ 동시에 아내나 남편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 가장 하찮은 ‘을’이기에 가능합니다.

무심결에 듣기엔 재치있고 삼박한 표현 같지만 사람에게 붙여야 할 인격성을 물질과 상품에 내줘버린 후 물질이 사람 대접받는 세상, 상품이 ‘갑’이 된 세상의 은유일 뿐입니다. 재미삼아 비트는 언어, 과장된 표현과 유머에는 그 시대, 그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법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이른바 해외 유명 브랜드 명품 가방과 ‘짝퉁’을 섞어놓고 진품을 찾아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고급스런 원단이나 바느질의 꼼꼼함, 끝마무리, 부착 장식품의 견고성 등에서 진품 식별이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을 깨고, 어깨에 메는 순간, 손에 드는 순간 ‘죽죽’ 올라가는 자존감, 자신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명품이라는 증거라는 말에 아연실색했습니다.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이라지만 기가 막혔습니다. 가방 따위가 사람의 인격과 인간적 품위를 결정한다니 그게 곧 ‘갑’이라는 게지요. 그 밖에 철 따라 옷 바꿔 입는 것보다 더 가벼이 행해지는 가공할 성형수술 등 인격을 물화(物化)하며 인간을 간단없이 ‘을’로 전락시키는 상황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는 것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질을 인격화하고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한 한국 사회의 기형적 갑을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이기에, 앞서 언급한 제 ‘갑을칼럼’에 달린 한 독자의, 요원하지만 따스한 댓글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결국 '그대 있음에 내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갑을의 계급적 관점은 삭막하고 어둡지만 대립이 아닌 낮과 밤, 여자와 남자, 저자와 독자, 교사와 제자, 실과 바늘 같은 동반자적 관계라면 따스한 동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필자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로 이민, 호주 동아일보 기자, 호주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 www.bistromeme.com 을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학교, 부산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글 쓰는 여자 밥 짖는 여자>,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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