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6 (일)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신아연 칼럼

내 안에 개 있다

[신아연의 공감]- ⑧

늘상 다니는 동네 마트 앞에 가면 주인을 따라 산보를 나왔다가 주인이 장을 보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트 안으로는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입구 기둥에 잠깐 묶어 두고 얼른 장을 보고 오는 것입니다.

개를 무척 좋아하는 저는 ‘마트 앞 기둥 나들이’를 즐겨합니다. 개들의 지루함도 덜어줄 겸, 가능하다면 나쁜 사람들의 해코지도 막아줄 겸,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네들과 노는 것입니다.
길면 20분, 짧으면 5분가량 기둥에 묶인 채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의 태도는 대략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주인이 자리를 뜨기 무섭게 낑낑 신음을 하고 온 몸을 발발 떨어대며 불안과 초조로 일관합니다. 겁이 나는 상황을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으로 깡깡 짖어대지만 그럴수록 두려움과 공포에 압도됩니다. 처음부터 천애고아였던 듯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주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하질 않아 보입니다.

성마르고 예민함이 지나쳐 패닉과 공황 상태에 빠져 불행해하는 이런 개들과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관심을 보이며 안심을 시키려 해도 소용없으니 그저 측은하게 바라볼 밖에요.

 

두 번째는 주인이 등을 돌리자마자 헤프게 구는 녀석들입니다. 주인이 오거나 말거나 , 첫 번째 개들과는 또다른 의미로 처음부터 혼자였으며 자유 그 자체였다는 듯 지나는 사람들마다에게 아양을 떨며 발랑 누워 좋아 죽겠다는 식입니다.

순간순간의 즐거움에 취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살핀다거나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안절부절 못하는 첫번 부류하고는 정 반대로 행동합니다. 저로서는 이런 개들을 데리고 노는 것이 가장 쉽지만 자기 재미에 취해 변심을 밥먹듯 하는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이 가끔은 얄밉습니다.

그런가 하면 숫제 바닥에 드러누워 태평스레 잠을 자는 것들도 있습니다. 주인이 반드시 다시 온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서라기보다 상황이나 사태 파악에 무딘 탓에 변화된 환경을 별다른 위협 요인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늘 명료하게 깨어 있질 못하고 반쯤은 조는 듯 살아 가는 평소 습관에 기인한 것이니 일생, 당장 죽을 것처럼 불안할 것도, 뛸 듯이 기쁠 것도 없이 이래도 심드렁, 저래도 심드렁합니다.

언뜻 보기엔 성격이 좋아 그런 것 같지만 실은 나태와 게으름의 타성에 젖어 깨어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불안’으로 깨어 있을망정 그래도 깨어 사는 첫 번째 부류보다 윗길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이런 것들하고는 그럭저럭 ‘코드’가 맞아 쭈그리고 앉아 쓰다듬어 주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순한 태도로 반쯤 졸면서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마지막은 일편단심, 초지일관 자세 한 번 흩뜨리지 않고 정면을 응시한 채 돌아올 주인을 준비된 믿음으로 기다리는 흔치 않은 부류입니다. 훈련된 충성심과 내면의 정결함으로 무장된 이런 개들에게는 감히 집적댈 엄두가 안 납니다.

어쩌나 싶어 눈 앞에서 알짱거려 보지만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듯 제게는 눈길 한 번 주는 법 없이 행여나 전방 시야가 가려질세라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자세를 다잡습니다. 주인과 온전히 교감하며 그 사랑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자부심과 단아함의 ‘아우라’ 에 휩싸이며 미물임에도 존경심이 듭니다.

 

근 2년에 걸친 마트 앞 개들에 대한 제 나름의 ‘고찰’을 사람인 제게 적용해봅니다. 저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개 주인’을 ‘하나님’으로 설정하고 ‘제 자신’을 ‘개’로 쳤을 때 어느 부류, 어느 위치에 있는지 반성해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개’처럼 현실에 취해 이 세상이 전부이고 물질에 이끌려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적은 없었지만, ‘첫 번째 개’처럼 삶의 실존적 불안감을 다양한 철학과 신념,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쇠락하며 절망에 빠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 존재의 근원이자 나의 지성 너머에 존재하면서 매일 매일의 내 삶에 인격적으로 개입하는 절대자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세 번째 개’와 같이 불신앙자는 아니되, 게으르고 나태해서 바싹 깨어 있지 못하는 상태를 지나고 있는 중이지만 바라옵기는 앞도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주인의 사랑에 송두리째 이끌리는 ‘네 번째 개’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필자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로 이민, 호주 동아일보 기자, 호주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 www.bistromeme.com 을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학교, 부산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글 쓰는 여자 밥 짖는 여자>,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HOT Chart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