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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안식 이야기 6 : 누구신지요?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64>


 

   1999년에 쓴 종말론을 다시 읽는다.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육체의 스러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너무나 허망하다.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에 희망을 건다. 따라서 영혼은 곧 희망이요 영혼의 구제란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주님은 영혼의 신원을 어떻게 알아보실까? 용모라면 간난 아기·소년·젊은이와 노인의 생김새가 평생 변하는데, 그렇다면 혹시 유전자 검사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정신상태도 당연히 변한다.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또 공인이라는 의미에서, 전 국민이 잘 아는 한 분을 예로 들자. 장모님을 도와서 천막 교회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청년 조용기.
 이적(異蹟)의 소문이 꼬리를 물어 교인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떨어진 믿음을 충전하려고 20세기의 이인(異人) 빌리 그레이엄과 부시 대통령이 찾아와 안수기도를 받았다는 영성이 충만하던 시절. 교회 상속문제로 언론의 집중조명에 당혹했던 노후. 
 천진한 유아기와 꿈으로 가득한 소년기를 더한다면, 생애 전환기의 몇 고비씩을 넘겨야 하는 인생에서, 어느 시점의 ‘영적 상태(靈的狀態)’를 조 목사의 진면목(眞面目)으로 볼 것인가? 다수의 고령자가 겪는 치매까지 치면 더 복잡하다. 주님이 심신(心身) 공히 알아보지 못하여, “누구신지요?” 하고 묻지는 않으실까?

 

   “옛날얘기 해줘요.” 긴 긴 겨울밤, 손자가 화로에 밤을 굽고 계신 할머니에게 조른다. 똑같은 얘기를 몇 번씩 들어도 재미있다. 항상 위험이 따르고 영양공급이 들쑥날쑥하던 수렵사회가 농경사회로 진화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가족 간에도 분업이 시작되자, 아이들 양육은 일선에서 물러난 할머니 몫이 된다. 자신이 듣고 겪은 일들을 두루 편집하여 들려주는 얘기가 바로 역사와 교육의 기원일 진대, 역사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 스토리(Her story)라던가? 아이는 사고치고 다치면서 자란다. “큰 소리 내지 마라, 애 놀랠라.” 생업에 바쁜데다가 아이들 장래가 걱정인 부모는 호령과 꾸중이 먼저 나오지만, 할머니는 어르고 달랜다. 사랑으로 가득한 스승이요 공급자(Provider)이니,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전지전능한” 신을 닮았다.
 신앙촌의 박태선 장로와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신자를 사로잡은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전 세계가 놀랐고, 종교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방탄소년단까지, 신바람을 타면 언어와 관습의 장벽을 넘어 삽시간에 세계를 풍미하는 한류의 ‘끼’는 어디서 왔을까? 필자는 끼의 뿌리를 ‘할머니’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할머니는 누구인가? 대가족 울타리 안에서 며느리와 마누라를 겸임하고, 정한수 떠놓고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어머니를 역임(歷任)한 모성(母性: Maternity)의 정점이요 종점이며, 인내와 끈기와 정성과 희생의 역사를 한아름 간직한 도서관이다. 

 

   윤여정은 세시봉의 뮤즈였다. 아이돌의 자산이 얼짱에 몸짱이라면 뮤즈는 지적(知的) 감성이다. 반드시 미인일 필요는 없고 순수 자연산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주전자 백 개는 찌그러뜨렸을 걸쭉한 허스키는 선운사 동구의 주모가 따로 없다.
 모든 일상을 극 중 배역에 맞추어 몰입하는 연기가‘ 메소드(Method)’연기라면, 반대로 배역을 ‘나’에게 맞추는 방법을 가칭 ‘브랜드(Brand)’연기라고 부르자.
 드라마작가 김수현 사단에 윤여정을 비롯한 이순재 고 남성훈 등,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 식의 개성 강한 연기자들이 많다. 자신만만한 자연산 용모와 거침없는 쉰 목소리에 자신만의 상표를 가진 브랜드 연기, 이 삼박자가 아무나 따르기 힘든 그녀의 자산이다. 종교를 뛰어넘어 서사(敍事)를 간직한 한국산 할머니가, 평생 한결같은 브랜드배우 윤여정을 만나 불꽃이 튄 사건, 이것이 영화 ‘미나리’ 신드롬의 본질이 아닐까? 그리고, “누구신지요?”라는 물음(愚問?)에는, “예, 저는 먼저 와계신 아무개 할머니의 손자입니다.”가 현답(賢答)이 아니겠는가?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