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견물생심의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을 갖고 있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은 욕심에 그것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자기 소유물이 된다면 긍정적인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물건을 탐하는 욕심만 있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물건을 탐낸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인 치과의사는 견물생심에 항상 절제력과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거나 자기 것만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치과의사의 명함에는 ‘성공’이라고 써져있지만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읽기 때문이다.견물생심을 영어로 하면 Seeing is wanting이고 견과생심은 Seeing is eating이라 표현할 수 있다. 물건을 보고 자연스레 욕심이 생기는 것처럼 과자를 보게 되면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평범한 가정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온통 우식성 식품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 아이들이 쉽게 꺼내 먹을 수 있어 충치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충치 예방을 위한 식이습관의 기본 원칙은 見菓生心과 “You are what
임상가들의 관심은 질병의 원인이나 본질을 생각하기 앞서 질병의 진행과정에 대한 예측이나 치료효과에 대한 예후 등에 관심이 더 집중되어 있다. 지극히 당연한 관심일지도 모른다. 질병의 원인은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고 애매한 점도 많기 때문에 진행과정이나 처치요법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마치 소방수가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잡는 것처럼 화재가 왜 났으며 화재의 진원지가 어디인가는 미쳐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나 할까? 우리는 언제나 불길을 잡아야 하며 잡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불길이 완전히 진화되면 안도와 성취에 도취되어 자만스러워지기도 한다. 이것이 임상가들의 속성 같은 것이다. 실험실에서 연구하여 나온 결과와 사람에게 직접 진료시술에 대한 결과 사이에 생기는 지적격차에 대한 갈등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속된 말로 이상과 현실은 틀리다. 설령 임상치의학에서 이론과 시술이 통일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이 있는 것이 바로 치의학 분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과의료를 질병개념으로 해석하려는 우리 전문가의 입장과 건강이나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단순히 불편함이나 외관상의 변화 즉 심미
공자가 살았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이었으니까 예수님보다도 500살 연상이었고 막내격인 마호메트 아저씨와는 무려 천 살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바로 한 세대 위에 석가모니가 계시지만 거의 호형호제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시 중국이 아무리 세계최강국이었다 할지라도 일반 서민들의 문화와 풍습은 상상하기 힘든 미개 수준이었음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당시에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들도 심심찮게 있고, 반역죄를 저지른 놈을 죽인 뒤 젓갈을 담가 그 후손들에게 먹였다는 이야기도 고서에 등장합니다.중국 사람들 '구라'가 세기로는 알아주긴 합니다만, 공자의 키가 무려 2m 80cm(9척 6촌)이라는 기록이 있고 앞이마가 펑퍼짐한 언덕 같다고 해서 이름을 구(丘)라고 했다는군요. 그러니까 뻥을 감안한다면 얼마 전 영화 '공자'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과 얼추 비슷한 키가 아니었을까요?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공자를 낳을 때 이미 70살이 넘었을 때고 공자 어머니는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았으며, 기록에 따르면 '야합'을 해서 낳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미성년자 혼빙간'.... 뭐 이런 거를 통하여 출생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잘 알려
마흔 넘어서 축구공을 한 번 차 본 사람들은 압니다. 분명 마음은 공한테 가 있는데 몸(발)은 한참이나 떨어져 있으니 헛발질이 계속 나온다는 것을요. 어디 헛발질뿐입니까? 운동장 흙바닥과의 눈대중 거리가 맞지 않아 땅을 헛디뎌 넘어진 적도 많습니다. 100m 달리기는 더 심합니다. 학창시절엔 15초에 뛰었네, 몇 초에 뛰었네 했지만 이젠 50m 뛰기도 버겁습니다. 골프장에서 잔디를 보호한다고 줄을 쳐둔 곳에 공이 들어가 주우러 간 적이 있습니다. 대략 줄의 높이가 40cm 정도라서 이 정도 쯤이야 하면서 폴짝~ 넘었는데.... 아뿔싸! 그만 줄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진 적도 있습니다.(그러니까 얼추 10cm 정도의 부조화가 생긴 겁니다) 그러니 이제 저도 뒷물에 밀려가는 장강의 앞물 신세입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따로국밥'이라는 거지요.급히 대구에 갈 일이 생겨 내려갔습니다. 저녁은 먹어야겠는데, 맛도 없고 맵고 짜기로 유명하다는 경상도 음식에다 식중독하면 떠오르는 영안실 음식이 두려워 아예 끼니를 해결하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대구시내 중심부(중구 전동)에 위치한 따로국밥거리입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교동따로'가 낫네 혹은 '국일따로'가 좋네
혹시 초밥(스시)을 좋아하시고 또 영화까지 좋아하십니까? 만약 그러하시다면 케이블 방송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주말 감기몸살로 꼼짝을 못하는 바람에 한 번 더 보았는데 역시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스시 하나 만드는데도 저렇게 전력을 다하는데 저는 치과를 너무 ‘날로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되고요.1. 스시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굳이 꼽으라면 냉면과 초밥(스시) 그리고 충무김밥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냉면집들은 집에서 너무 멀고, 스시도 서울로 가야 하거나 바다까지 건너야 할 뿐더러 게다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쌉니다. 충무김밥 역시 멀리 통영까지 가야 하니 약식으로라도 먹으려면 명동까지 내달려야 합니다.그런 음식들은 대충 아무데서나 먹으면 될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나 하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도 하지만, 나름 식도락가연 하는 체면에 그렇게 호락호락 몸을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위의 세 음식을 가만 따져보면, 비주얼 상으로 화려하지도 않고 절대 복잡하게 생겨 먹은 음식들이 아닙니다. 냉면의 경우도 찬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되는 것이니까, 시중에 파는 ‘청수냉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의 저자 충무공이 만약 현직대통령이셨다면,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안현수 선수가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체육계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라는 말 대신, “바야흐로 출전 중이니 조용히 덮어두고, 반드시 귀국 후에 조사하라.” 했을 것이다. 순발력과 승부욕과 배짱을 다투는 쇼트트랙에서, 시합 전 긴장으로 위염을 앓고 잠을 설치는 판에, 본국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문은 선수·임원 모두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을까? 1992년 김기훈 이래 동계올림픽 효자종목으로 떠오른 쇼트트랙은, 접촉 확률이 높은 급커브의 연속으로, 한국인의 뛰어난(?) ‘새치기 솜씨’에 빗대어 짓궂은 농담이 떠돌았고, 일본계 미국선수 오노는 가해자가 교묘하게 피해자로 둔갑하여, “허리우드 액션”이라는 파울 이름의 원조가 되었다. 그래도 인사이드 파고들기와 막판 폭발적 체력으로 아웃에서 추월하기, 결승선에서 날(blade) 들이밀기 등 우리 선수가 개발한 독창적 테크닉이 많다. 그러나 비디오판독이 필요할 만큼 치열한 자리다툼과 신체접촉으로 작전 즉 견제와 악역이 필요한데다가, 연금과 병역의 특혜가 따르므로,
옛날 학창시절 해부학 실습을 할 때 사람의 두개골을 만지면서 그곳에 생생히 남아있는 몇 개의 치아를 본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치과의사가 된 것이 천직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때 그 두개골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치아의 모양이 무척 ‘이쁘고’아름답게 느껴졌다고 기억된다.오랜 풍상을 겪어 표면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단단한 ‘이쁜’차돌맹이 같기도 해 옛날 필자의 부친께서 늘 아끼고 만지작거리시던 상아담배 물뿌리의 색깔과 흡사한 빛을 내고 있었다. 생명을 잃어버린 두개골의 박힌 치아의 색깔과 모양에서 야릇한 정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두개골에서 보았던 치아는 바로 상아(象牙)였다.코끼리 이빨이 아닌 사람의 치아(人牙)이지만 죽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보석인 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사람의 치아를 만지면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치아에 매달려 지금까지 치료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와서 그 치아가 다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학창시절 해부학 시간에 얼핏 느낀 두개골에서 본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다시 되살아난 것일까? 한 물건을(치아를) 수십여년 만지작거리다 보면 그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어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하여 찾아주신 내빈 여러분, 조합원님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로 우리 대전·충남 치과의사신협이 어느덧 18회 정기총회를 맞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의 대표가 일주일간 치과 셔터를 내리고 연수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던 일과, 수료식 전날 밤의 촛불행진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데, 드디어 성년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더불어 제5대 김형식 이사장님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산 2백억을 달성하고 3%의 출자금 배당까지 이루었으니 더 더욱 축하할 일입니다. 큰 이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모험성이 강한 Project Financing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규모가 클지라도 비조합원에 대한 금융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으며, 조합원유치를 위한 과다지출을 자제하는 소신경영,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얼핏 건너지 않는 신중함으로 일관해온 역사가, 비록 발은 느릴지 모르나 큰 사고 없이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원해주신 조합원 여러분과 열심히 일해오신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조합이 추구해온 정체성 지키기, 공동체의식 갖기, 항상 기본으로 되돌아가기가, 장기불황과 분열이라는 어려움을 맞아 치과 의료계 전체
홍어 이야기를 하자니 갑자기 김주영 작가의 '홍어'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워낙 바람둥이여서 별명이 홍어라고 했던가요? 그러다 결국은 마지막에 부인으로부터 처절한 응징을 당하고 맙니다만, 어쨌든 홍어는 수컷의 거시기가 쌍으로 두 개여서 바람둥이를 상징한답니다. 요즘은 홍어의 생식기를 회로 먹으면 오도독하면서 쫄깃한 식감에 제법 인기가 많다지만, 원래는 암컷을 더 비싸게 쳐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이 잡자마자 수컷의 거시기를 떼서 암놈처럼 팔았다고 하더군요(일종의 성전환수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나온 말이 '만만한 게 홍어 X'이구요. 사실 홍어 맛의 핵심은 첫째로 코에 있고요, 둘째가 날개, 셋째가 꼬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홍어 거시기와 애도 인기라지요? 보신탕집에 가면 단골들에게 ‘만년필’을 서비스로 내주는 것처럼, 홍어식당에서도 홍어 생식기는 주인장과 친해야 나오는 특식입니다.가끔 낚시로 홍어를 잡아서 들어 올리면 홍어 두 마리가 같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는 홍어가 교미 중에 잡힌 것입니다. 수컷의 날개 끝 뾰족한 부위로 암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고 있기 때문이고, 암놈은 낚시의 먹잇감을 놓치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에 수원으로 이사를 왔으니 수원 사람이 된지도 벌써 근 오십 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수원 인근이긴 하지만, 초중‧고를 수원에서 나왔고 또 치과도 개업 이래 수원을 떠난 적이 없으니 오리지널 수원 사람이라고 우겨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지금 사는 용인의 유명 인사나 정치인들은 하나도 모르지만, 수원을 배경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뒷담화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수원 인구가 대략 12만 정도였는데, 이는 전국 10대 도시에 간신히 들까말까 할 정도였으며 목포, 전주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때보다 무려 열 배나 커졌습니다. 땅덩어리까지 커졌으면 좋으련만 인구만 늘었으니 변두리는 죄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찼고 중심가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합니다. 인근 화성시와 오산을 수원과 통합한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지역 공무원들의 이기주의와 토호 세력들의 각종 이권이 개입된 문제인지라 지지부진합니다.제가 어렸을 때는 속칭 이중 언어(Bilingual)를 구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학교에서는 표준말을 썼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