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16일 흥남부두. 제10군단 아몬드 육군소장이 선택한 승선(乘船) 순위 1번은 미 해병 제1사단이었다. 그 의미를 새겨보자. 첫째, 심각한 타격을 입은‘병동(病棟)사단’에 대한 응급 배려다. 사상자가 70%에 가깝고, 생존자 반 이상은 심한 동상환자였다. 둘째, 유공자 예우다. 해병사단 12,000 명을 격멸하려고,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 7개 사단 12만을 투입하였다. 제1사단은 후퇴하면서 17일간 중공군의 발을 묶어놓아(tie-down), 동북지역 국군과 UN군 10만이 흥남으로 집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중공군은 사상자 45,000명으로 아군의 6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어(공군의 폭격과 해군 함포사격의 도움) 3차 공세에 합류하지 못하고, 적군의 진격은 수원 선에서 멈추었다. 결국 아몬드 장군은 영웅의 값비싼 희생에 ‘마땅한 예우’를 해준 것이다. 짧은(3년, 월남전 9년) 국지전에서 미국은 36,576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었다.(전사자를 54,000명으로 집계한 보도가 더 많다.) 트루먼의 결단과 UN의 참전결의는 빠르고 추상같았으나, 막대한 희생과 매카시즘에 대한 반동으로, 아이젠하워 후보의 종전(終戰)공약이 대세가 되
호주 국립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곳에선 하지 못할 몇 가지 흥미로운 일들을 하게 되는데요, 주로 병원에서 일을 하지만 양로원, 초중고등학교, 감옥 등을 돌아가면서 출장을 다니게 되요. 그중 저희 타운스빌 국립병원에서만 가는 특별한 곳이 있는데요, 바로 원주민들만 사는 Palm Island라는 섬입니다. 타운스빌에서 비행기로 약 30분 정도 거리이고, 호주에서 유명한 산호초 안에 들어 있는 이 작은 섬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요. 호주에 영국인들이 처음 정착을 하고, 1920년 백호주의가 강했던 시기에 호주 정부에서 문제 있는(혼혈 원주민)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 섬으로 보내어 가두었죠. 마치 미국드라마 Lost에 나오는 섬 마을같이 특별한 곳이에요. 200여개의 다른 지역, 다른 부족 원주민들이 모여 살다보니 서로들 많이 다투기도 하고, 백인 경찰들과의 마찰도 항상 일어나고요. 2004년도에 발생한 폭동 때는 원주민들이 정부 건물들에 불을 지르고, 섬에 거주하던 호주 경찰들은 모두 병원으로 피신해 타운스빌에서 다른 경찰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갇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해요. 제가 Palm Island에서 근무를 했던 2010~2011년도에는 다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 미혼 남녀에게 흔히 던지는 멘트다. 그래서 국수를 장터나 단체회식용 서민음식으로 알지만, 실은 있는 집 아니면 잔치 때나 맛보는 귀하신 몸이었단다. 밀은 보리보다 수확이 늦고 쌀과 이모작이 어려워 생산량도 적었다는데, 전란의 폐허에서 어떻게 칼국수 같은 값 싼 분식이 가능했을까?미국과 상호안전보장법(1951)에 의하여, 소위 ‘잉여농산물’로 밀이 대량 공급된 때문이었다. 원조 근거는 미 공법 480호로 단일 화 되었다가, 1963년부터 무상이 아닌 장기차관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칼국수 대전’이 탄생하고, ‘막 파스타’ 칼국수가 배고픈 ‘피난 코리아’를 먹여 살렸다. 밀에는 글루텐이 많아 위장은 낯가림으로 불평을 한다. 밀가루음식의 캡은 본시 빵이지만, 반죽·발효·숙성에 오븐을 거치는 과정은 시간과 품이 드니까, 위를 속이려고 적당히 물과 섞어(?) 무쇠로 된 빵틀에 구워내는 ‘막 빵’을 고안해 낸다. 그것도 막 노동자가 허기를 때우는 값싼 ‘풀빵’과, 그럴듯한 꽃무늬에 달달하게 팥고물이 들어간 ‘국화빵’으로 신분에 차별이 있었다. 빵에 곁들일 주스는 냉차가 제격이다. 역 오른쪽에 7, 8 가구가 몰려 사는 낡은 일본식가옥이 있
얼마 전 명절음식 준비하던 중 커다란 그릇에 가득담긴 육전 재료를 보고 딸아이가 겁먹은 소리로 속삭인다. “엄마 이거 언제 다해요?” 딸아이 관점에서 이게 엄청 많은가 보다. 난 담담하게 “얼른 끝날걸? 얼마 안되는데?”라고 말하며 나도 딸아이만한 시절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이전에 이런 일들에 대해 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나보니 내게도 어린 시절 어머님이 주신 과제 중에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거 같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 콩나물 다듬기였고, 중간 멸치 손질 하는 과제였다. 어머님께서 쟁반 수북이 쌓인 콩나물을 주시면 그게 얼마나 많고 해도 해도 줄지도 않는지, 멸치는 왜 그리 비릿내가 나는지, 그리고 그럴 땐 꼭 때 맞춰 얼굴이랑 몸은 가려운 곳이 자꾸 생겨 몸을 비틀고 언니를 불러 이곳저곳 긁어달라고 부탁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했던 기억들이 있다. 일상의 일들이 이렇게 커 보이던 시절 1년 가까이를 외가댁에서 보내면서 외할머님은 호기심과 의문이 많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연구대상이었다. 내가 뭔가 이야기만 하면 척척 해결해 주시는 것이 마치 마술사 같았다. 그 중 하나가 깨에 대한 내 의문이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할머니는 수확한 깨를 마당 한켠에
새 밀레니엄 전야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절박감에 쫓겨 총회를 불과 3주 앞두고, 협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1999). 동반 연임을 원한 협회장과 의장에게는 실례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난히 당선, 상처투성이일지언정 ‘치과전문의제도’안을 통과시킨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 의장에 취임하자 바로 그해 10월 종합학술대회에서 전 회원에게 나누어 드릴 세 번 째 칼럼 집 ‘거품의 미학’8천부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가급적 자제해왔던“치과인 끼리 주고받을 이야기”30여 편을 우정 넣었다. 이제는 공개토론도 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뜻이었다.물론‘치과의료 문화상’수상에 대한(1998. 4. 25) 감사와 보은의 뜻도 있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글을 쓴다.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 말미를 장식할 ‘마침표’가 아쉬웠다. 마침 대전은 새 천년을 맞아 낙후된 동부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역사(驛舍) 밑으로 관통도로를 뚫는 대역사(役事)를 진행 중이었다. 평생 낯익었던 역 광장이 천지개벽을 하니, 사라질 풍경에 추억의 일화를 곁들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바람 찬 흥남부두’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못지않은 한 많은 사연들
'도다리국'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도다리쑥국'은 일 년에 한 달에서 한 달 반 남짓, 그것도 초봄에만 맛 볼 수 있습니다. 쑥 향은 이미 날아갔고, 질겨서 끊어지지도 않는 ‘개쑥’도 상관이 없다면야 도다리쑥국은 '사철음식'이 되겠지만, 시대는 이제 '제철음식' 제대로 먹기가 대세 아니겠습니까?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해쑥'도 일반 뭍에서 나는 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남해안과 섬 지역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른 봄에 땅을 뚫고 나온 '해쑥'만이 도다리쑥국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이거든요. 게다가 음식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도다리마저 봄이 되어야 물이 한껏 오릅니다. 오죽하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생겼을까만, 진짜 봄 도다리는 살이 탱글탱글하고 찰집니다. 꼭 도다리만 넣어야 쑥국이 완성되지는 않지만, 광어나 가자미를 넣어서는 일단 맛도 맛이거니와 쑥과 어우러지는 풍미도 별로이고, 쑥국을 부르는 말의 운치도 나지 않습니다.경남 통영은 도다리쑥국의 본향입니다. 물론 거제도를 비롯하여 인근의 큰 섬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통영시가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은 사실이지요. 게다가 각종 언론에서 해마다 봄소식을 전할 때 도다리쑥국
대전예술의전당 개관이래(2003) 후원회장을 맡아 가끔 공연리뷰를 쓰게 되었다.많지 않은 글 중에 세 번 이상 나온 분들은, 한국 창작춤 단체 창무회를 창단하고 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김매자씨와 플루티스트 재스민(최나경)양, 그리고 소프라노 한예진씨다. 필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 세 분을 리뷰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김매자: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에서 택견 권법까지 변화무쌍이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동작이 정연한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시킨다.관객석 뒤에서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2003 아트홀 심청) 아크로배틱 매스게임처럼 정밀(精密)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군무(群舞)는, 심청전·얼음 강·불이문(不二門)을 거치며 향상일로인 김매자 브랜드에 영락없다. 3·4부는 비 내리는 비래리로부터 우슬현을 감싸 도는 세 내(대전천·갑천·유등천)를 표현, 마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루어 대해로 흘러나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훌륭한 ‘표제무용’을 연출한다.(2009 아트홀 대전블루스 0시 50분)
가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방송을 보다가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아직도 어느 야구장의 스코어보드가 전광판이 아니고 사람이 손수 쓴 수동식 스코어판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세인트루이스 구장이 아니였나 기억된다.옛날 우리나라 야구장에서도 사람이 직접 스코어판을 갈아 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전광판으로 바뀌었고 대형 텔레비전 화면까지 장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미국과 같이 과학 선진국이고 부강한 나라에서 아직도 옛날식 스코어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은, 전광판으로 장치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는 더욱 아닐 터이다. 옛날부터 사용해 왔던 전통적인 관습을 굳이 과학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서 섣불리 갈아치우는 것보다 옛날 것의 멋스러움과 향수를 쉽게 팽개치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치우는 성급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배려되어 있는, 의식적인 전통에 대한 고집 같은 것 일 것이다.과학적 지식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정확한 지식이며 과학적 방법과 검증만이 쓸모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엔 틀림없다. 인류문화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지식은 주관적 지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문명이 점
쌀쌀한 날 해거름이면 문득 생각나는 명동 ‘조타집’. 소공동 수련의시절에 가끔 찾던 대포집이다. 뭉근한 불을 절대로 꺼뜨리지 않는다는 오뎅 국물이 일품이다. 인기 안주는 참새구이 꼬치로 애 저녁에 동이 난다. 아작하고 깨물면 고소하고 짭쪼롬한 그 맛... 정종 대포 서너 잔에 한 시간쯤이면 혀가 슬슬 풀리면서 온몸이 혼혼해진다. 주머니가 두둑해도 네 마리를 꿴 한 꼬치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음은 늦은 주당들에 대한 배려다. 따끈한 국물에 연갈색 무가 무한 리필이요 서비스 보따리(후꾸로)도 있으니, 귀한 걸 나눠 먹는 건 말없는 약속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입맛도 변했지마는, 이젠 진짜 참새구이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 농약 때문인지 환경오염 탓인지 참새 자체가 원체 귀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 핵심목표로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에 재미교포 김종훈씨가 내정되었다. 15세에 이민하여 빈민촌에서 굶기를 밥 먹 듯 고생한 끝에, 30대 후반에 미국 400대 부자가 된 과학자이며 CEO다. 존스 홉킨스대 전자공학과 졸업, 해군장교로 7년간 핵잠수함을 탔다. 메릴랜드대 공학박사과정을 마치고 벤처회사 설립, 개발한 장비가 성공하여 큰
저처럼 와이프에게 쫀쫀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진료를 하루 땡땡이 치고 놀러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대개 이런 일을 감행하는 치과의사들은 개원 경력이 오래 되었거나(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진 않았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너무 지친 사람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을 모아놓고는 차를 하나 빌려서 1박 2일로 남해안 나들이나 다녀오자고 살살 꼬드겼습니다. 악당들의 유혹에 넘어간 피노키오처럼 동기 친구들은 잘도 속아서 따라옵니다. 제 입장에서는 같이 갈 일행이 있어서 좋은데 한편으론 덜컥 겁도 납니다. 진료도 팽개치고 시간과 돈을 들여 놀러 가는 마당에 만약 볼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다면, 그 원성은 고스란히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제 신조가 ‘선사고 후수습’인 까닭에 일은 저지르고 볼 일입니다. 와이프들에게 바가지 긁히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지요. 차량도 대형 ‘카니발’로 빌렸고, 심지어 운전기사도 수배했습니다. 같은 돈 내고 쉬러 가는 판에 누구는 운전하느라 피곤하고 게다가 술까지 못 마신다면 공평한 일이 아니지요.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지형은 벌교가 목줄을 쥐고 있는 ‘캥거루 불알주머니’ 형상입니다. 반도의 좌우로 여자만, 득량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