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함께 일본기원 초단면장을 들고 돌아온 조남철에게는, 한국기원 창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국내 고수들 수준은 두 점 접바둑쯤으로 짐작한다. 네 귀와 변에 열여섯 점을 미리 놓고 흑이 천원에 첫수를 두는 신토불이 ‘순장바둑’은 살벌한 육탄전 전술에 강하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4백 년 전부터, 361로 어디에나 자유롭게 착수하는 전략적 포석 차원에 올라있었다.일찍이 도사쿠(道策)가 정립한 근대바둑을 슈사쿠(秀策)가 견실한 실리 운석(運石)으로 보강하고, 오청원·기타니(木谷) 합작품인 신 포석으로 화점(花點)이 부활하는 등, 최소한 두 차례 이상의 혁명(발상의 전환)을 경험하였다. 이처럼 도예(道藝)로 숭상하며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일본과 한국의 실력 격차는 당연하였다. 오오다케(大竹)의 소위 우주 류(宇宙 流)에서 임해봉(林海峰)의 두터움으로 이어진 화려한 공중전은 물론, 중국식 포석도 3 연성의 변형이니, 모두 신포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기원의 처음 20년은 조 국수의 독무대였는데, 그 아성을 김인 국수가 접수한다. 김인을 일본바둑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입단 후에 1년 유학이 전부이니, 순수 토종이 맞다. 뛰
치과에 혼자 씩씩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나 처음 방문 때는 치과 공포심을 이기고자 반드시 누구와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과 그리고 연로한 노인들은 딸이나 며느리 혹은 드물긴 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아들과 같이 옵니다. 겁이 많은 젊은 사람이라면 먼저 치료를 받았던 친구를 동반하지요. 팔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은 부부가 손잡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괜히 가슴 한쪽이 시려올 때가 많습니다. 제 3의 젠더인 '아줌마'들은 한 사람이 치료받는데 단체로 와서 대기실을 점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스턴트 무료 커피 역시 같은 숫자로 나갑니다. 그런데 아줌마들 심리가 참 묘합니다. 환자가 거의 없을 땐 원래 치료 받기로 예약이 된 분만 받고 가는데, 환자가 미어터지는 날은 꼭 자기도 보고 가겠다는 이상한 심리가 작동합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아줌마들 하소연 들어주는 일도 보통이 아닙니다.특수한 경우지만, 종교인들은 어떨까요?대처승이 아닌 대개의 스님들은 혼자 살기 때문에 자기 관리에(특히나 구강건강)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부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들은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배우자인 사모로부터 간섭 겸 관리를 받아서 대체로
드라마 ‘응답하라 88’ 최종회(20)의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에 마지막 멘트는, “응답하라, 나의 쌍 8년도, 내 그리운 날이여!”다. 1988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격의 한 해였다. 그러나 필자세대의 쌍 8년은 단기(檀紀) 4288년 즉 1955년이다.그 해에 UNKRA (UN 한국재건 단)가 문 닫고 정부에 부흥부(復興部)가 발족하였다.내 발로 일어선 이때가 개발연대기(年代記) 시발점으로 삼기에 딱 좋은 해 아닌가?허허벌판 폐허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던 역동의 시절을 지나면서, 누가 좀 철 지난 얘기를 하면, “야, 지금이 쌍 8년도인 줄 알아?” 면박을 주는 것이 유행어였다.단기 88년에 홀로서기 시작하여 서기 88년 민주화의 첫걸음에 맞춰 세계올림픽을 주최했으니, 과연 세대차는 물론 표현의 차이까지 느끼게 해준 33년의 세월이었다.복고주의의 복고라면 restore·revive·react·recover 등 다양한 동사가 있는데, 정치나 유행패션이 아니라 “그 시절 추억에 잠기기”와 비슷한 말은, 20%쯤 부족한대로 relive다. 좋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장점이나, 현실도피로 흐른다면 독이 된다.사회와 담쌓고 화려한 과거 속에 살아가는 왕년의 스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음에 의존하는 종교적인 관점과 어떤 통팔에 의해서 이해하려는 철학적 관점이 있으며 실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특히 과학적 관점에 의한 여러 가지 벌칙들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삶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유용하고 일관된 지식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과학적 지식에 의해서 판단하고 접근하려는 경향 때문에 과학만능주의라고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로인해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 온다는 표현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인과관계로만 파악하려 들고 그 관계가 일치되지 않을 경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가 아닌 감성적인 판단에는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이나 예술적 사고와는 항상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과학적 사고 방법은 자연법칙을 추출해내고 확인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해서는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미천한 부분이 많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엄밀히 정의되고 실험으로 검증된 지식
추억이란 오랜 세월에 헹궈낸 앙금이어서 엄마 품처럼 푸근하고, 슬픔과 아픔은 머릿속의 지우개로 조금씩 지워져 모난 곳이 없다. 밉던 곱던 그 시절에 가깝던 지인들은 세월의 뽀샵(Photo shop)을 거쳐 선남선녀가 되는 것이다. 19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 쇼 무대는 민스트렐(Minstrel)이 스타였다. 중세 이후 수백 년간 활약한 유럽의 노래꾼에서 유래한 말로서, 백인이 검정 칠을 하고 흑인으로 출연하는 코믹 뮤지컬의 원조다. 영화 ‘Jolson Story: 1946’를 보면 당시 인기를 짐작한다.Minstrel 작곡가 Bland가 만든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는, 미국의 슈베르트라는 포스터의 전통에 따른 사투리와 멜로디의 흑인민요다. 평생 허리가 휘도록 노예로 일한 늙은 흑인이, 태어나 자란 버지니아 목화농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포스터(Stephen Foster: 1826-1864) 작곡 “Old Black Joe”에서 조는, “내 마음이 젊고 밝던 시절(when my heart was young gay)은 가버리고”라며 운명에 순응한다.윤석중의 노랫말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로 익힌 “Massa’s in the cold,
째보는 언청이를 말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전공 분야인 입술 언청이, 그러니까 한자어로는 구순열(어떤 지휘자 부인과 이름이 같군요.^^)입니다.군산과 목포엔 째보선창이라는 부두가 있습니다. 과거엔 흥청거리는 부두였지만, 지금은 매립되거나 폐항구처럼 되었습니다. ?째보선창은 마치 입술이 찢어진 모양새로 안으로 움푹 들어온 선창이라는 말이겠지요. 군산의 째보는 이곳 선창을 쥐락펴락했던 객주가 언청이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이설도 있긴 합니다.그런데 째보선창에 관한 문학적 기록은 꽤 됩니다. 멀리는 채만식의 '탁류'가 대표적이지요. 소설에서 작가는 째보선창가의 미두장에서 현물투기를 하는 인간 군상들과 일제수탈을 고발합니다. 가까이는 박범신 선생의 소설 '소금'에도 나옵니다. 원문을 옮겨보면, 탁류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땅콩밭을 처분하고 고향인 세도를 떠나 군산 째보선창으로 이사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가산을 모두 탕진한 ‘정주사’가 “두루마기 둘러쓰고 풍덩 물로 뛰어들어 자살이라도 해볼까” 하고 늘 탄식하던 곳이 바로 째보선창이었다.한때는 고군산열도 일대에서 들어온 고깃배들과 김제평야의 질 좋은 미곡들이 모두 모여들어 그
안익태씨 이전에 애국가는 스코트랜드 민요 ‘올드랭자인’의 곡을 빌려 썼다.Auld lang syne은 영어로 Old long since, 즉 “그리운 옛 시절”로 Those were the days! 와 통한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가슴 뭉클한 아픈 손가락이니 ‘추억장사’는 밑지는 법이 없다. ‘응팔’의 대박이 드라마의 장군이라면, ‘오빠생각’은 영화계의 멍군이다.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1.400만 명을 넘겼을 때 예상된 추억상품의 수작이다. 국제시장은 흥남철수작전에서 시작하여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송(派送) - 월남 파병 – 중동 건설로 이어지고, 1983년에 “이산가족 찾기”의 눈물바다로 정점을 찍어, 6·25의 잿더미에서 기적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개발연대기’였다.‘오빠생각’은 단순한 연대기(年代記)를 넘어, 그 기적을 가능케 한 우리 민족의 저력, 즉 강한 연대감(공동체 의식)과 불굴의 자립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중학생 때 본 전송가(Battle Hymn, 1957)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1985) 미남 스타 록 허드슨 주연의 A급 영화다. 딘 헤스대령은 1950년 12월 중공군에 쫓기는 급박한 1·4후퇴 상황에서, C-47 수송기 15대를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조선의 치과계는 환희 속에서 당면 문제에 대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치과계 최초의 종합지로 1946년 5월 1일에 발간된 『朝鮮齒界』 창간호에는 당시 치과계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고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연재하면서 70년 전 선배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당시의 맞춤법이 지금과 적잖이 다르지만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리: 조영수■ 집회와 소식 1. 조선치과의사회 진용위원장 안종서부위원장 문기옥서무위원 안병식 기획위원 이유경 방안자보건위원 학술위원 김문조 정보라 자재위원 조명호 문기옥조사위원 정도성 박영준 재무위원 박부영 박동상 평의원 박명진 조호연 박용덕 정용국 원재신 이양숙 홍사근 최의종 조기항 이형주2. 경기도치과의사회 위원 부서 결정3월 10일 결성된 경기도치과의사회 제1회 위원회를 3월 11일 상오 11시 치전회의실에거 개최, 위원 부서를 아래와 같이 결정하고 하오 1시 산회.위원장 문기옥부위원장 총무부위원 안병직 부위원장 이창용총무부위원 이유경 서병서 조명호 이성민 이희창보건부위원 박명진 정보라‘재무부위원 김연권 박영균3. 경기도치과의사회
이때 쯤 산의 나무를 가까이서 보면 분명 잎사귀도 없는 마른 갈색나무인데, 멀리서 보면 뭔가 옅은 연두 빛이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학교 복도에도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2학기와 비교 할 때 학생 수도 같고, 시간표도 비슷하게 운영되지만 웬일인지 복도에도 학생들로 가득차고 게시판 앞의 분위기도 호기심과 생기가 넘친다. 또 복도를 지나다 보면 반가움에서 가던 걸음을 불러 세우는 아이들이 부르는 호칭이 다양해진다. 방학 중 현장임상 실습 현장에서 익숙한 호칭들이 입에 배여 있어 호칭만 듣고도 이 아이가 몇 학년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종합병원에 실습 다녀온 3학년들은 ‘과장님’이라 부른다. 또는 ‘원장님’이라고 하는 학생들은 개인의원 실습을 경험한 2학년들이다.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마치 신혼부부에게 ‘여보’라는 호칭이 어색하듯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새내기 들이다. 이런 분위기들이 봄 학기를 활기차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3년에 한 번씩 새로운 지도 학생을 만나게 된다. 올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학교생활과 학칙, 교과목 소개 등의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지도교수와의 상견례 시간을 갖기 위해 교실로 들
TV 드라마의 초창기 60년대에는 성우 출신 탤런트가 잘 나갔다. 동시녹음이 아니라 성우 목소리에 의존하던 영화배우가 쩔쩔맬 때, 대사부담이 없는 성우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한류 드라마’는 지구촌 곳곳을 점령했지만, 지나친 ‘막장’ 경쟁으로 비난도 빗발친다.종편방송 출범으로 시장이 커지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소위 건전드라마 ‘응답하라 88(응팔)’이 최고시청률 19.6%에 15초 당 광고단가 3천만 원대로 치솟아 지상파방송을 추월하고, 아이돌 특히 걸 그룹 멤버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어리고 연기 경력도 짧은 이들이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내공이다. 이르면 초등 때부터 혹독한 연습생 훈련으로 동작과 표정연기에 익숙하다. 둘째 연습을 통해 무대공포증(카메라 울렁증)을 자연스럽게 극복하여, 카메라가 무섭지 않으니, 60년대 성우들처럼 연기에 쉽게 몰입한다. 셋째 화면해상도가 SD에서 HD로 발전하자, 작은 주름살도 놓치지 않는 카메라 앞에서, 옛날 식 피부 관리나 성형시술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선명도(鮮明度)의 극치라는 UHD(Ultra High Definition) 방송이 시작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