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화두는 불신·불행·분노·증오·테러 등 부(負)의 감정을 소비한다.대중문화를 지배하는 방송가도 막말·비 호감·막장드라마가 대세다. 황금의 손 ‘김수현 드라마’도 도중에 횟수를 줄인다. 아기자기한 스토리, 청춘남녀의 오글거리는 사랑, 삼대가 주고받는 무뚝뚝한 대사 속에 숨은 끝 모를 희생과 가족사랑...모두가 우리 전통사회를 끈끈하게 얽어주던 청실홍실이요, 민족의 저력을 한데 묶어준 접착제였다. 이제는 세상만사 돌아가는 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니, 불륜과 패륜으로 치닫는 막장이 아니고는, 약 팔리는 ‘구경꺼리’가 되지 못 한다.뺨 싸대기 왕복은 기본이요, 컵의 물을 얼굴에 끼얹고 두 무릎 꿇리기는 악수보다 흔한 싸구려 몸짓으로 자리 잡았다. 막장도 “갈 데까지 가보자.”로 경쟁이 치열해지니, ‘회까닥’하는 작가가 나오고, 차라리 ‘동물의 왕국’을 보겠다며 한탄을 한다. 그냥 다큐멘터리는 밋밋하니까, 애초에 소통과 화해의 토론문화가 낯 설은 제작진은, 토크쇼와 오락게임의 중간쯤에 ‘예능프로’를 개발힌디. 본래의 뜻과는 달리 코미디언·개그맨이 대종을 이루는 예능인 중에, 미남형인 신동엽·차태현·이휘재씨도 있지만, 대체로 비 호감이 더 많다. 이리저
흔히 말하는 B급 영화란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나 A급 영화에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기술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가끔 저예산 영화들 중에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고, 독립영화처럼 예술성이 높은 경우도 있어 마냥 하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미식 차원에서도 원용할 수가 있습니다. 비싼 레스토랑이나 고가의 한정식, 한우전문점 혹은 일식집 같은 메뉴를 A급 미식이라 한다면, 평소 집에서 먹는 음식들이거나 비록 저가이지만 대중의 인기가 많은 경우를 B급 미식 혹은 B급 구루메(gourmet)라고 말할 수 있지요. 중구의 을지로 뒷골목은 그런 B급 음식점들이 몰려 있고, 요즘도 직장인들로 성황이어서 약간 한산한 주말의 B급 미식 투어로는 제격인 곳입니다. 특히나 약간 어스름할 때 을지로 뒷골목은 과거 속에 현대가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현대 속에 과거가 숨어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묘한 곳입니다. 이곳을 걸을 때마다 저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밀회를 즐기던 홍콩의 그런 골목들과 식당이 떠오르곤 하지요. 각설하고, 제가 대학을 입학하고 첫 미팅을 나간 곳은 종각 대일학원 옆 심원다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첫사랑을 평
1960년대 대학생들에게 팝송은 생활의 일부였다. 브라더스 포의 그린 필즈나 팻 분의 에이프릴 러브 등 감미로운 멜로디들은 전설이 되었다. 미팅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팝송 몇 곡은 불러야했는데, 필자는 세광출판사의 재즈멜로디 열 몇 권을 외운 덕분에 제법 폼을 잡았다. 빌보드 순위를 줄줄 외우던 동갑나기 외사촌 형이 명동에서 사온 도너츠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앞뒤 한 곡씩인 45회전의 작은 LP판).서울대는 11개 단과대학 대항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을 개최했는데, 초청가수 인기 1호는 최희준·박형준·유주용·위키리의 4인조 포 클로버스였다. 송해 씨 전에 5년간 ‘정-궁-노래자랑’사회로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위키리다. 뒤이어 등장한 통기타 부대가 세시봉인데, 개인 히트곡도 많은 포 클로버스가 오케스트라라면 세시봉은 작은 실내악이요, 인기비중도 그랬다. 부르기 쉽고 듣기 부담 없는 팝송은, 옛 선비의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 치기처럼 여기(餘技)에 가까웠다. 부르는 사람은 전업(專業)가수로서 장래에 확신이 없었고, 우리는 음악 감상실에서 무료로 들으며 함께 흥얼거리는 보너스 개념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네들에게 영원한 아마추어의 매력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경험과 실험 혹은 관찰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지식 또한 아름다움, 사랑, 행복 같은 순수한 개인의 감정과 통찰만에 의해서 생기는 주관적 지식이 있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이 두 극단적인 객관과 주관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객관적 지식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의 생활을 돕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말하며 우리의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적 지식은 대부분 주관적 지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라틴어로 주관(Subjectum)은 ‘아래에 있는 것’, 객관적(Objectum)은 ‘건너편에 던져진’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어원적인 풀이를 보아도 주관이 객관보다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는 주관과 객관을 대상화시켜 그 사이에 넘지 못할 장벽을 만들고 주관에 더 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객관을 동질화시킴으로써 주관과 객관이 영원히 따로따로 놀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대 철학에서는 주관은 객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의 분리는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사전에는 임화(臨畫)를 “화집(畫集) 따위의 그림을 본 떠 그려 배우는 일, 또는 그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왕초보 중학생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첫걸음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남의 것을 베끼는 도둑질 같아서 맘이 편하지 않았다. 눈으로 읽고 뇌가 해석한 영상과 감흥을 붓을 통하여 재현하는 ‘수법’은 배우겠지만, 데쌩과 구도와 창의(素描·構圖·創意)력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역기능을 한다. 1990년대에 디트로이트의 한 아울렛에서 골프구두를 샀다. 같은 풋 조이 제품이 $40와 $120 의 두 가지였는데, 어느 비오는 날, 싼 것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빗물이 멋대로 드나들어 양말을 적신 구두는, ‘Made in Taiwan’ 하청업체 제품이었다. 필자는 현대미술 팝 아트를 인정하기 싫다. 만화를 베낀 그림이나 조수를 동원한 대작이 미술품이라면, 예술로서의 미술은 존립 가치가 흔들린다. 하물며 오락·도박의 대명사 화투를 그려놓고 미술작품이라고 떼를 쓰는 주장은 용서할 수 없고, 조수에게 하청하여 대량생산한(Factory) 대작은 CG(컴퓨터 그래픽)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그저 벽지(Wall Paper) 대용품 정도가 아닐까? 일상의 용품도 장인(匠人)이
방학은 학생들만 즐거운 게 아니다. 극장이 즐겁고 학원들이 즐겁고 음원회사들이 즐겁고 여행사들이 즐겁고 빵가게도 덩달아서 즐겁다. 방학은 어떻게 보면 10대라는 구매층을 한 트럭씩 싣고 와 시장에 쏟아 붓는 일과 같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가지고 싶은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이 집단이 부모들을 쥐어짜면 짤수록 역설적이게도 경제는 활력을 얻는다. TV광고도 신문광고도 십대를 컨셉으로 방학 이벤트를 내보낸다. 옷 가게들이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시기도 이 방학을 즈음해서다. 요즘이야 그런 일들이 없겠지만, 동네 산부인과가 자랑하는 바캉스특수 성탄절특수도 결국은 ‘방학’이 뿌린 씨를 훔치듯 거둬들이는 어부지리가 아닐까? 의료계에도 방학특수라는 것이 있었다. 당장 손을 써야 할 질환은 아니지만 꼭 필요하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치료가 주로 방학기간에 몰려들기 때문에 생긴 용어다. 피부질환이나 성형이 주이기도 해서 병원들로선 괘나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은근히 방학을 기다린 것도 사실이다. 텅 빈 대기실에 무료한 눈길을 보내다가도 ‘방학이 되면 나아지겠지’ 라고 혼잣말처럼 내뱉고 나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방학특수'란 먼~ 옛날 이야기그랬었는데,
너를 기다리는 동안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기다림]기다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건 일생에 한 번쯤은 가슴을 쿵꽝거리며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립니다.그래서.., 열리는 문마다 깜짝 깜짝 눈을 주다가 짧은 순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서야긴 한숨과 함께 눈길을 거둡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 종내는 '내가 너에게로' 갑니다.먼데서 아주 힘들게 오고 있을 너를 앉아서 기다리기가 안스러워혹은,
인류가 서있는 대지가 들끓는 마그마 위에 떠도는 부평초 신세임을 금년처럼 절감한 때가 없다. 총선에서 여당은 지 승질을 못 이겨‘자 뻑’을 하고, 제 차례를 맞은 미 공화당에 막말의 달인·미국 판 허경영(?)이 돌출하여 선두주자가 된다.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렇다 쳐도, 미국·유럽연합의 두 경제공룡이 출구를 찾지 못하여, 경제학교과서 비틀기로 몸부림을 친다. 이슬람 국가(IS)의 테러는 계속 난민을 양산하고,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개발도상국에는 비상이 걸렸고. 전 세계 제조·유통 의 공장인 동북아 3국이 휘청거린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와 결과에 막장드라마처럼 들끓는 ‘분노의 저주’ 가 어른거린다. “분노의 해법은 나와 내 가족으로부터”라는 의미에서 대전고등법원 소식지에 기고했던 ‘2월의 단상(斷想)’을 소개한다. - 집에서 S 설렁탕까지 allegro non troppo로 걸어 25분 걸린다. 지난 X마스에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대덕대교에서 발이 멈췄다. 38년 만에 찾아왔고 날씨가 맑아야 만날 수 있으며 앞으로 19년은 지나야 또 온다는 유난히도 크고 밝은 슈퍼 문... 아내와 함께 우성이산 중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3대 족발집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장충동 '평안도족발집'에서 족발을테이크아웃 해봤습니다.헌데, 3대니 4대 혹은 5대같은 표현을 대체 어느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상당히 용감무쌍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런 서열이란 것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인데, 이를 기자가 받아쓰고 다시 블로거들이 열심히 퍼 나르다 보니, 마치 역사교과서처럼 기정사실로굳어져 이를 감히 부정하고 개인적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매우 곤란한 지경이 되었습니다.어쨌거나 과거에 경험했던 평안도집 족발 맛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도 않거니와 “세상의 족발이 다 그 족발이지 뭐가 특별날까?”하는 냉소적 마음에 전화로 물어보니밤 11시까지 식당을 연다고 하여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습니다. 게다가 족발이 조금 뿐이 남지 않았으니 주문부터 하고 출발하라는 말에 어찌나 급하게차를 몰았는지 시골 집에서 장충동까지 한 시간도 걸리질 않았네요. 그러나 식당 안에는 아직 회식이 끝나지 않은 팀들이 두엇 보이고, 제가 주문한 족발만 까만 '비니루 봉다리' 속에서 임자를 기다리고 있네요.그런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주변 간판을 돌아보니 죄다 원조 간판입니다.
난전(亂廛)에도 상도의가 있고, 성직자 중에서도 상상도 못할 범죄자가 나온다.역경과 핍박을 삭여낸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투사가 되지만, 분노에 굴복하면 짐승만도 못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정상적인 민주시민은 가혹하게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반발하는데, 국민을 짐승처럼 가두고 사육하는 동물농장 북한에서는 그마저 불가능하다.가난해도 자유와 활력이 넘치던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난데없는 10월 유신은 날벼락이었다(1972). 당시의 남북관계·국제상황과 유신의 평가는 뒤로 미루고, 적어도 종신집권을 기도한 독재체제라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분노와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를 구속하자, 마침 세계적인 사회참여의식 속에 유행하던 ‘정의구현운동’과 맞물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출범한다. 그 후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고, 6·29선언을 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민주화의 큰 물줄기를 잡았으니 숨 한번 고르고, 성직자요 어른답게 세속의 정치·사회문제에 너무 자주 개입하지 않았다면, 비(非)신자들에게도 여전히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이란처럼 신정일체 국가를 빼면, 종교의 정치개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