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환자의 마음’이라는 책을 집어들었을 때,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마음이 이러이러하니, 의사들은 이러이러하게 행동하라는 지침을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그런 행동에 관한 지침이라기 보다는 ‘의사-환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상태들, 예를 들어 신회, 희망, 공감, 동정심들이 환자의 몸안에서 어떤 생리적인 반응을 나타내는가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아픔’이라는 증상을 신체적인 고통과 정서적인 불안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언뜻 보아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불안감이 실제로 ‘아프다’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이 대단한 점이 여기에 있었다. 나는 환자가 고통을 느낄때 정서적인 불안감도 경감시켜주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신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원인이므로, 신체적인 고통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정서적인 면은 고려해주면 좋지만 안 해도 무방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연구를 보면 정서적인 면에 영향을 주었을때, 실제로 인체 내에서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발생하며 이를 통해 실제로 통증이 경감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신체적인 면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정서적인 면까지 충분히 고려했을 때 과학적으로도 치료효과가 높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아팠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분명 신체적인 고통도 있었지만, 사실 어떤 경우에는 그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경우도 있었다. 한방병원과 일반병원을 함께 다녔는데, 한방병원의 경우 환자의 정서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듯 보였으나, 치료에 있어 합리성이 다소 부족해보였다. 이에 비해 일반병원에서의 치료를 증상에 따른 과학적인 치료법을 이용해 루틴하게 진행되었지만, 환자의 정서적인 면은 사실상 무시되는 듯 했다.
이 책에 나오는 두가지 고통, 즉 신체적인 고통과 정서적인 불안감의 측면에서 보자면 신체적인 고통을 해결하는 데는 합리적이었지만, 정서적인 면을 보듬어주는 데는 소홀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치료되지 않았고, 물론 그 부분이 의사가 정서적인 면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과 같이, 그러한 정서적인 면이 치료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증명된 이상, 그런 메커니즘을 보다 증폭시켜서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노력은 조금 부족해보인다.
한번은 개복수술로 종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곳의 담당의사는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보호자들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한 번 대답해준 내용을 또 물어보면 매우 짜증을 냈다. 그리고 환자에게 수술 후 주의사항을 알려줄 때에도 매우 명령조로 대했다. 물론 중요한 수술의 경우 환자가 주의사항에 따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그런 식으로 반응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환자의 정서적인 불안감을 다스리는 것, 그것이 결국 치료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면 좀 더 환자의 정서적인 면을 배려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마침 지금 ‘소아치과’ 옵저베이션을 돌고 있어서 그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과와 다르게 소아치과에서는 어떤 술식을 하든, 미리 충분히 설명하고, 직접 시범을 보이는 등, 소아 환자의 불안감을 줄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소아환자의 협조도가 매우 높아진다. 협조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미리 어떤 진료가 이루어질지 알고 있는 경우, 그리고 의사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커질 경우, 고통도 감소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굳이 소아환자가 아니라도, 동기들끼리 서로서로 마취실습을 할때, 나의 파트너는 선무당같은 내가 놓는 마취가 불안한 나머지 아무런 곳을 터치하지도 않았는데, 입술에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껴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최근에 내가 본 술식이나 겪은 경험만 해도, 정서적인 불안감이 우리 몸에서 통증을 느끼는 프로세스에 얼마나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사라면 환자의 이런 불안요소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이 책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 책이 의사의 제목을 보고 의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다가, 정서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치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메커니즘을 소개하는 책이었다고 서두에 썼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책은 의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대해야할지 알려주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신체적인 고통을 치료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정서적인 면까지 고려하는 것이 결국 그 환자의 고통을 치료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나는 나중에 어떤 치과의사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내가 환자였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되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치료기억들에서 떠올린 그 의사의 모습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이었던 것이다.
글 : 김남진<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 이 원고는 부산대 치전원 정태성 교수가 3학년 소아치과학II 강의에서 과제물로 받은 독후감 중 표절검사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뽑은 우수독후감 입니다. 좋은 작품을 추천해주신 정태성 교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