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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시가 있는 풍경 9] 이육사의 '청포도'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칠월]
7월은 방학을 맞는 달이다.
학구적인 편이 아닌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방학은 학기 내 노역(?)을 보상하는 즐거운 선물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이육사의 시 청포도 읽고 외워오기' 같은 꽤 맘에 드는 숙제가 여름방학 과제물 속에 끼어들기도 했다.
한여름의 땡볕이 마당을 달굴 무렵 툇마루에 걸터앉아 육사의 시를 읽었다.
읽을수록 시 속으로 이입되는 나를 느꼈지만, 이 시와 연관된 이미지가 바뀐 적은 한번도 없다.
거기엔 언제나 파란 하늘과 잘 익은 연두색 포도 그리고 멋스러운 나무식탁이 바다를 바라보며 놓여 있었다. 
집 앞 포도나무에 열리기 시작한 불투명 포도알을 한참을 들여다 본 적도 있다.
안타깝게도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장면을 재현할 순 없었다.
이 즈음의 시는 대개의 경우 진지하고 엄숙했다.
'시는 엄숙한 것'이라는 데에 조차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물며 육사를 알고부터는 엄숙한 그의 시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북풍의 광야를 떠돌아 투옥을 반복해온 그에게 '청포도 익어가는 내 고장 7월'은 얼마나 짙은 그리움이었을까? 

육사의 시 '절정' 전문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쉽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