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스위스 조력자살을 선택한 세 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 기록이자 삶과 죽음을 다룬 철학 에세이. 독자라는 인연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폐암 말기 환자의 조력사 동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환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안 저자 본인의 감정적 파고와 안타깝고 절박했던 현장의 상황을 올올이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죽음 배웅을 하고 돌아온 저자는 그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침잠한다. 그 과정에서 창조주를 만나게 되고, 극한의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 이면의 죽음마저도 영생을 향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며 담담히 뒤늦은 말을 걸고 있다.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어느 날 한 독자로부터 스위스 조력사 동행 제안을 받는다. 본인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 책에는 죽음 여행을 떠나기 전, 죽음과 삶을 성찰하며 두 사람이 나눈 깊은 인문적 대화와, 실제로 죽어야 하는 사람과 그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저자는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리라고 자신을 다잡지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눕고 마는 그를 보며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든다.
-일반석도 아닌 비즈니스석을 타고 스위스까지 ‘거창한’ 배웅을 나갔지만 정작 저는 가시는 분의 행선지를 몰랐습니다. 사실 본인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기막힌 일 아닌가요? 행장을 완벽히 꾸리고 국제 공항으로 나갔는데 그 많은 나라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럽겠습니까. 되돌아보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만난 하나님을 그때 만났더라면 그분 손에 천국행 티켓을 쥐어드렸을 테지만, 그리고 천국행 티켓은 스위스에서는 발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드렸을 테지만 이제는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본문 중에서>
특별한 배웅을 하고 온 저자는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태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에 동행했다고 해서 본인이 조력사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조력사 현장을 경험한 후 기독교인이 된 저자는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며 따라서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조력사는 또다른 조력사를 부를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와 함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 신아연 저 / 책과나무 간 / 128×188mm, 192쪽 / 정가 14,000원>
작가 신아연은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의 책을 냈고, '열린뜻'과 덴틴에도 칼럼을 기고해 치과계 독자들과도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