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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말모이 운동 4 : 훈민정음과 발음부호( 訓民正音·發音符號)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40>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중국어 어순과 문법이 우리말과 너무 달라, 백성들이 제 뜻을 펼치기 어려움을 통찰한 깊은 뜻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거란과 몽골 등 오랜 타민족의 지배와 기방 끈 짧은 주원장의 명나라를 거치면서, 엉망이 된 한자발음을 정비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도 있다.  이름부터 말·글(語文)이 아닌 바른 ‘소리(正音)’다.  시작이 한자의 ‘발음부호’였다 하더라도, 백성이 쓰기 쉬운 글로 만들어 반포한 큰 뜻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마오(毛)가 현대화의 미명하에 간화체를 만든 것은 좋으나(1952), 발음 보완을 위해서 병음(倂音; 1958)이 추가된다.
 영어에서 쓰는 발음기호는 말 그대로 ‘만국’ 공통이다.  같은 라틴 부호를 쓰면서 중국만의 유별난 발음을 고집한 병음은, 국제사회 룰을 깨뜨린 반칙이요, 아쉬운 너희가 따라오라는 폭거이며, 외국인의 중국어 학습을 어렵게 하는 오만이다.

 

   당명(黨命)에 의해 첩이(簡話體) 정실이 되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본처가 오히려 번자체(繁字體)로 밀려난다.  당시 중국학자들은 현지 출장을 포함, 한자 권 3개국인 한국 일본 베트남 옛 언어를 집중연구 했다고 한다.  다만 그들은 이두(吏讀)나 가타카나(片仮名)가 오랜 연구와 현장적응을 거쳐 만들어진 대체문자였음을 간과한 것 같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형님!”하며 넙죽 엎드릴 문자의 천지개벽을, 번개 불에 콩 구어 먹듯 단 몇 년에 해치우다니...  물론 형편없이 낙후된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려면, 당시 세계의 대세였던 업무자동화(Office Automation)에 적응할 문자 간소화는 절실한 과제였다.  여론조사도 타당성 연구도 없이 공산전제정권이 급조한 문자가, 과연 중국의 과학·현대화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당장 IT 시대에도 계속 효율적일까?  남의 나라 일에 참견할 생각은 없으나, 어차피 병음이 필요했다면, 번자체는 살려둔 채, 표음문자인 알파벳이나 발음부호, 또는 음가가 분명한 한글을 일상어로 활용하면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인류문화유산의 큰 손실이라는 면에서 애석한 점이 많다.  상형문자로부터 조합과 진화를 거듭해온 번자체에는, 수천 년 문화의 변천사가 담겨있고, 대부분 소리 부분과 뜻 부분이(音·訓) 내장되어있다.
 이를 무시하고 편한 대로 싹둑 잘라 냈으니, 소리도 뜻도 짐작하기 어려울 뿐더러, 상형문자 특유의 회화적(繪畵的) 아름다움(Calligraphy) 마저 날아갔다.

 

   사설문화원에 등록하여, 치매 예방용으로 ‘만만한 중국어’를 배운지 한 해가 흘렀다.  일주일에 한 시간, 그것도 더러더러 건너뛰니 애당초 어학 공부는 글렀다.
 연식(年式)이 다된 뇌는 저장기능을 상실한 하이패스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는 속담은 현실이 되었다.  한자지식이 도움이 될 줄 알았더니 끝내 간자체와 분란만 일으켜, 결국 병음을 합하여 세 가지 문자를 배우는데, 그게 끝이 아니고  4성(四聲)에 권설음까지 혀에 쥐가 난다.  짜증이 쌓이니까 끝내 목수 연장 탓하는 넋두리가 되고 말았다.  이왕 나온 김에 험담 한 가지만 더.  가뜩이나 외우기 힘든데 우리말로도 생소한 인터넷 용어가 쏟아진다.  웨이신바오치·잉용청시·왕샹소우수오·안주앙(위챗·앱·검색·설치) 등.  잘 쓰지도 않는 나에게 이걸 다 외우라구?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도 새 들온말을 억지로 옮기려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웬만하면 그대로 부르자.  우리가 만든 새 아이디어·새 제품에만 우리 이름을 붙여 팔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만한 중국어’는 꽤 재미있다.
 새롭고 낯선 것을 배우는 건 신나니까.  일주일 전에 배운 걸 깡그리 잊어버리면, 항상 낯설어 더 좋지 않은가?  쫓아낼 수도 이사 갈 수도 없는 이웃, 한족(漢族)의 무례한 사고방식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건 또 지피지기의 덤 아닌가.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