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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말모이 운동 1 : 낮은 말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37>

 

   만년동 S 설렁탕은 그런대로 옛 맛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노포다.  몇 개월 전 문을 닫고 크게 수리를 하더니, 입식 의자에 혼 밥이 편하도록 바꾼 것까지는 좋은데, 왠지 국 맛이 심심해졌다.  한식집 탕과 일식 오뎅 국물은 잠시라도 불을 꺼뜨리면 안 된다더니, 시간이 좀 지나면 옛 맛을 되찾겠지...  며칠 전 새벽, 옆 테이블에 막 퇴근(?)한 듯 보이는 세 여성이 앉았다.  한 여인이 “국에 넣는 파 좀 더 주세요.”하니까 옆에서, “얘는 뭘 넣는 걸 그렇게 좋아해.”  다함께 까르르 웃는다.   ‘파’ 여성이 되받는다.  “너는 빨아 먹기를 좋아 하지 않아?”   다시 까르르...  김치 깍두기가 곱다는 말은 고춧가루를 나우 버무려 색깔이 붉다는 뜻이니, 매콤한 김치 깍두기를 물에 헹궈 먹는다는 말인가 보다.  누가 듣거나말거나 홀이 떠나가게 거침없이 떠드니, 세상 참말로 좋아졌다.  한물간 아재 개그 한 토막.
 설렁탕집에 약간 얽은 사내가 화장 짙은 앳된 여인을 데리고 들어섰다.  주문을 받는데, “갈비탕 하나에 곰탕 하나, 보통으로.”  주인이 주방을 향하여 큰소리로 복창한다.  “3번 테이블에 갈보 하나, 곰보 하나!”

   그러고 보니 세상이 마냥 좋아진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저런 단체·연대가 나서 동네방네 시끄럽다 보니, 말과 글에 답답할 정도로 셀프 재갈이 물린다.  카드 중에 하트와 스페이드 잭은 옆모습의 얼굴로, 속칭 One-eyed Jacks다.  바로 말론 브란도의 감독 데뷔작인 서부극 제목으로, 지금은 보석상가로 변한 단성사에서 봤는데(1963), 한글 제목이 ‘애꾸눈 잭’이었다.  지금은 그 낱말을 못 쓰고 원어대로 ‘원 아이드 잭스’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시민단체가 벌떼같이 일어나, “장애우 비하(卑下)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시위를 벌일 테니까...  영화 타짜 속편 작은 제목을 보라.  소설가건 평론가건 한때 시작(詩作)의 과거(?)가 있다.  산문(散文)에도 은근한 운율이 있어야 편히 읽히고 공감을 얻으니까.  항상 험한 말을 삼가라는 가르침에 따라, 한 제자가 공자님께 아뢴다. “저 분 다리 하나가 짧군요.”
 공자 가라사대, “한쪽 다리가 더 길다고 해라.”  같은 말이라도 이왕이면 칭찬 쪽을 택하라는 뜻이다.  곰보 절름발이 사팔뜨기 언청이 벙어리 말더듬이 귀머거리 소경 등등 장애인도 많은데, 소경을 ‘완전한 시각 장애인’ 하면 시든 소설이든 리듬이 깨진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장애우 비하로 찍혀 ‘묵사발’ 되는 꼴을 보면, 주구장장 당쟁으로 날을 새며 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은, 자업자득으로 벌 받은 탈레반의 민낯이다.  “장애인 시설을 짓자.”하니, “집 값 떨어진다.”며 너도나도 피켓 들고 나서는 ‘위선(僞善)’은, “내가 바로 조국이다!”가 아닌가?

   사실은 민족 DNA가 아니라, “부모가 주신 신체발부(身體髮膚)를 다치는 건 죄악이다(不堪毁傷)”라는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읽은, 유교 탈레반들의 족쇄 탓인 게다.
 게다가 한 눈을 잃는 것은 전상(戰傷)이나 사고 또는 종양처럼, 타의에 의한 불가항력의 사고이니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일찍이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태봉의 궁예,  이스라엘 6일전쟁의 다얀장군 등 기라성 같은 영웅이 있고, 버버리 코트 휘날리던 ‘형사 콜롬보(피터 포크)’와 명품 조연배우 이희도가 있으며, 가까이에는 박지원 의원과 필자가 신뢰하는 성실한 후배도 있다.  진정한 동행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불편을 덜어주는 일 아닌가?  말은 곧 사람이란다.  조선일보가 펼치는 ‘말모이 운동’은, 우리 것을 찾고 지키자는, 매우 시의적절한 겨레의 동질성 회복운동이다.
 푹 고아 뽀얀 설렁탕 국물처럼, 깊은 우리 맛을 되찾자.  그리고 최소한 문학작품만이라도, 이름 부르기(呼稱)에 걸려있는 금기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