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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안식(安息) 이야기 2 : 쉼터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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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에 물 맑아 쌀 좋고 인심 후한 진천서 살고, 죽어서 명당(明堂) 많은 용인에 묻힌다는 말이 있다(生居鎭川 死居龍仁). 옛날 한 사또의 명 판결에서 유래한 말로, 집과 무덤 공히 살 거(居) 자를 쓰니, 주택 유택(幽宅) 두루 택(宅)이라는 ‘이어짐’의 생사관이 엿보인다. 친구들과 제주 S리조트 회원권을 사서, 휴가 때 네 부부가 16인승 미니버스를 렌트하기로 했다. 나만 빼고는 모두 법조계 전 현직 중진, 소위 영감들인데 “일당 5만원!” 했더니, 석 달 만에 셋이 다 운전면허 2종을 1종으로 바꿔 왔다. 즐거운 일화가 많았다. 이틀에 나누어 3백여 회원이 참가하는 골프대회에서 안식구가 홀인원 황금 골프공을 탔고, 필자는 퀴즈대회에서 신라호텔 2박3일 숙박권, 다음 해에는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을 탔다. 항공권은 비수기 본인에 한한다는 규정 탓에 그림의 떡이었고, 장모님이 쓰려던 숙박권은 예약한 날 호텔의 전관봉쇄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갑자기 외국 정상과의 회담 일정이 잡혀 출입금지란다. 
 마땅한 대통령 전용별장도 없는 형편에 졸속외교를 하니까, 호텔을 예약한 국민과 바이어(buyer) 등 외국 손님들에게 민폐(民弊)를 끼치는 현장이었다.
  
   사진동호회 ‘인상(Impression)’은 전시회와 도록 발간 등 질적 양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고, 필자도 열심히 출사를 따라다녔다. 이른 새벽 대청호 호반의 물안개 찍던 추억이 새롭다. 이제는 망원렌즈·삼각대 무게가 벅차, 가끔 대청호 5백 리 길 걷기에 만족한다. 21개 구간 중 하나를 골라 한 시간쯤 걷는다. 어느 가을날 #4 호반 낭만 길을 걸으며 심심풀이로 도토리를 줍는데, 왠 할머니가 “다람쥐 양식을 왜 훔치고 난리여?” 핀잔을 준다. 낙엽이 푹신하고 양지바른 나무 밑에 누워서, 수면에 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맞다. 다람쥐가 감춘 곳을 잊어버려야 나무가 자손을 퍼뜨린다는 데. 무심코 저지른 행동에 자연의 순환이 망가질 수도 있겠구나. 슬슬 눈두덩이 무겁다. 그냥 편안하게 한숨 잠들고 싶은 곳... 
 그런 곳이 바로 영원한 쉼터 명당이라면, 대청호반에 대통령 별장을 조성한 전두환 대통령의 선견지명이 한결 새롭다. 어차피 상수도원보호구역으로 개발 금지요, 아늑하고 조용한 자연 속에서 외국 정상을 만나, 빗장 풀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을 나와 영어가 중간만 갔어도, 청남대를 충청북도에 반환했을까? “국민께 돌려준다.”는 우물 안 개구리 식 인기 영합으로, 거시적으로는 외교 발전을 막고 국민 레저와 경제활동을 해치니까, 기업은 2류 공무원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 별장은 혼자만의 쉼터가 아니요, 휴식 자체가 창조와 생산의 도약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잘 가꿔 평소에는 개방하고 대통령 휴가나 정상회담 때는 출입을 제한하여 짭짤하게 쓰면 되련만, 그래서는 선거용 ‘득표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짧은 소견이다.
 사실은 밤샘 대화로 설득-타협할 실력과 소양이 달린다. 기자회견을 자꾸 미루며 3분이 넘거나 어려운 질문은 소위 ‘아랫것’들한테로 돌리고 뒤로 숨는 지도자,    거물과 맞장 대화할 배짱이 없는 대통령에게, 청남대 같은 시설은 낯설고 버겁다. 
 외국어라면 배재학당 졸업생 대표로서 ‘영어로 답사’를 한 이승만(20세 1897)과 노태우 박근혜가 있고, 적극 외교-배짱 외교는 위 세 분과 박정희를 따라올 인물이 없다.  궁극적인 안보는 외교에 있으며, 외교의 꽃은 ‘초청외교’인 것을...

 

   이하응은 왕이 둘 나온다는 풍수를 믿어 절을 불사른 자리에 부친 남연군의 묘를 썼고, 이승만의 부친 이경선은 소출 4백 석이 넘는 전답을 묫자리 장만에 탕진했다고 한다. 고종과 순종의 즉위로 예언은 실현되었다. 이승만 또한 존재감도 없던 일제 식민지의 망명객 외교관으로, 독립에 크게 공헌하여 건국 대통령이 되었으니, 경선의 위선(爲先) 사업도 성공이었다. 그러나 두 왕은 5백 년 사직과 백성을 왜(倭)에 상납한 망국의 임금이요, 이승만은 혁명에 밀려나 국부라는 이름마저 박탈당했으니, 만사 새옹지마라 하겠다. 단, 백 년 넘는 역사에 떳떳하게 내세울 지도자가 한 사람도 없다면, 이제는 국민 스스로가 겸허하게 반성할 때가 아닌가?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