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거 현장에서 선거 뒷 다마(後 談話)처럼 맥 풀리는 얘기도 없다. 평범한 민초는 공무원이 제일 무섭고, 공무원은 국회의원만 없으면 신이 내린 직장이며, 국회의원은 선거만 없으면 해 먹을 만 하다니, 제일 무서운 것은 역시 선거인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그냥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니까.그래서 선거 때는 벼라 별 말싸움 몸싸움으로 다투지만, 승패가 갈린 뒤에는 피차 주고받을 말이 없어지고, 유권자도 더 이상 말발이 서지 않아 입을 닫는다. 그래도 한마디 짚고 넘어갈 이유는, 첫째 다음 선거를 위한 교훈 하나쯤은 건져야 하겠고, 둘째 미국 어느 시에서 ‘일본해’에 ‘동해’를 병기하도록 결의한 것처럼, 당선자로부터 공약에 대한 ‘짱’을 확실히 박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선거인단에 의한 최초의 협회장 선거에서 제일 큰 관심사는 역시 투표율이었다. 마감시간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한때 천 명이 넘으리라는 낙관론도 있었지만, 최종집계 1,481 중 980명으로 66,2%, 치과의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합격점 투표율이었다. 열정적인 정견발표는 세 분 후보 모두가 치과계의 든든한 재목임을
1. 합동정견발표회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다섯 차례 헌법을 개정하여, 1987년 제6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4·19 혁명, 5·16 쿠데타, 10월 유신, 신군부 쿠데타, 그리고 6·29 선언이 그 계기였다. 이제 대의원총회 결의로 “선거인단제도”를 채택, 첫 선거를 맞으니 말하자면 “새 공화국”이 태어나는 셈이다. 본인은 직선제는 물론 선거인단제도에도 반대하지만, 중지를 모은 제도인 만큼 최소한 2, 3회는 시행해봐야 한다고 믿는다.이 제도의 장점은 첫째 지역별·연령별·성별로 “쏠림현상”이 배제되어 대표성에 하자가 없는 “무작위 추출”이고, 둘째 그 숫자가 본래의 목적대로 대의원총회의 “결정권을 희석”하는 동시에, 셋째 경제성까지 갖춘 최소한의 적정수준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세 후보 공통인 “직선제 관철 공약”은 유감이다. 첫째, 그것이 소신이라면 이 선거를 보이콧하고 계속 투쟁함이 옳다. 의총 결의에 대한 정면 거부이니까.둘째, 어느 계층의 표를 겨냥한 것이라면 그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셋째, 정해놓고 해보기도 전에 고치자는 주장은, 기본 상식이나 예의에 어긋나며 꼴만 사납다.지난 4월 17일 대전에서 세 후보를 초청, 중부권 3개 지부(충북·충남·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의 저자 충무공이 만약 현직대통령이셨다면,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안현수 선수가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체육계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라는 말 대신, “바야흐로 출전 중이니 조용히 덮어두고, 반드시 귀국 후에 조사하라.” 했을 것이다.순발력과 승부욕과 배짱을 다투는 쇼트트랙에서, 시합 전 긴장으로 위염을 앓고 잠을 설치는 판에, 본국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문은 선수·임원 모두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을까? 1992년 김기훈 이래 동계올림픽 효자종목으로 떠오른 쇼트트랙은, 접촉 확률이 높은 급커브의 연속으로, 한국인의 뛰어난(?) ‘새치기 솜씨’에 빗대어 짓궂은 농담이 떠돌았고, 일본계 미국선수 오노는 가해자가 교묘하게 피해자로 둔갑하여, “허리우드 액션”이라는 파울 이름의 원조가 되었다. 그래도 인사이드 파고들기와 막판 폭발적 체력으로 아웃에서 추월하기, 결승선에서 날(blade) 들이밀기 등 우리 선수가 개발한 독창적 테크닉이 많다. 그러나 비디오판독이 필요할 만큼 치열한 자리다툼과 신체접촉으로 작전 즉 견제와 악역이 필요한데다가, 연금과 병역의 특혜가 따르므로,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하여 찾아주신 내빈 여러분, 조합원님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로 우리 대전·충남 치과의사신협이 어느덧 18회 정기총회를 맞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의 대표가 일주일간 치과 셔터를 내리고 연수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던 일과, 수료식 전날 밤의 촛불행진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데, 드디어 성년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더불어 제5대 김형식 이사장님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산 2백억을 달성하고 3%의 출자금 배당까지 이루었으니 더 더욱 축하할 일입니다. 큰 이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모험성이 강한 Project Financing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규모가 클지라도 비조합원에 대한 금융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으며, 조합원유치를 위한 과다지출을 자제하는 소신경영,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얼핏 건너지 않는 신중함으로 일관해온 역사가, 비록 발은 느릴지 모르나 큰 사고 없이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원해주신 조합원 여러분과 열심히 일해오신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조합이 추구해온 정체성 지키기, 공동체의식 갖기, 항상 기본으로 되돌아가기가, 장기불황과 분열이라는 어려움을 맞아 치과 의료계 전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를 “화병”으로 푼다면, 그중 으뜸은 “배 아픈 병”이며, 이는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비교(질투)에 사로잡히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가 없다.5천만 중에 1등이라고 자타가 인정해도, 2등보다 못한 구석이 한 곳 쯤은 있을 것 아닌가. 바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인 이유다. 불행하게도 불평등을 증폭하여 질투를 부채질하고, 갈등을 조장하여 정치적인 이득과 이념적인 승리를 꾀하는 무리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들은 화합을 깨뜨려 전 국민을 앵그리 버드로 만드는 “증오 바이러스”다. 심지어 종교로 위장하고 학자를 가장한 바이러스는 없는가? 있다면 그 방법은 부정선거보다 더 부정하고, 그 이득과 승리는 거짓된 것이다. 바이러스에 휘둘리는 한 행복지수가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상적인 인체에서 암세포로 변환할 소질은 항상 존재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병한다는 것은 대체의학자들의 주장만이 아니다. 사망예정일(?)을 받아둔 말기 암환자의 기적적인 치유를, “엔돌핀 같은 물질이 쏟아져 나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 속에서 행복지수를 업그레이드할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고의
“안녕하십니까?”는,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에서 온 것이란다. 조선조에만 왜구침략이 수백 차례요, 큰 왜구 도요토미 때는 전 백성이 목숨 지키기에 바빴으며, 이어 양대 호란(胡亂)을 치렀다. 서민들은 질병과 기근에 곯고 양반과 아전의 수탈에 시달리다가 일제 폭정 하에 들어갔고, 해방이 되자마자 동족상잔의 6·25까지 겪었으니, 평생에 두 다리 뻗고 편히 잠든 날이 몇 밤이나 되었을까? 그래서 ”밤새 안녕?“이요 ”진지 잡수셨습니까“ 한다. 고대생 주현우(27)씨가 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에 반응이 뜨거웠다. 복수어미(複數語尾) ”들“을 따뜻하게 읽기도 한다. ”나“보다는 겸손과 동료의식이 담긴 ”우리“라는 대명사를 선호하는 국민정서에 들어맞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조폭이 자릿세 뜯으려고 점포에 들려 건들건들 겁주는 말투를 닮았다. 카메라나 관중 앞에서도 흔히 ”안녕하십니까?“ 하지 ”들“을 붙이지 않는다. 최소한 무게 있고 진정성을 담은 말 본세와는 달리 빈정대는(sarcastic) 어감이 있다. 온 국민이 고통스러운 것은 맞고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성과 논리의 잣대로는 원인제공자를 특정할 수
“나를 파월장병 사병묘역에 묻어 달라.”는 고 채명신 장군의 유언을 받아들여, 장성에 관한 관례를 깨고 화장을 하여 안장한 일은, 다시 한 번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를 계기로 남들이 못한 일을 실천에 옮긴 고인의 뜻을 살려, 국립묘지의 군인묘역에 “신분의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이 있다. 사후에도 생전 계급에 따라 예우하는 ‘이상한’ 구획조성이요, 나라사랑에도 귀천이 있느냐는 것이다. 웃어넘기기에는 꽤 심각하고 동조하는 분들도 있다하니 이를 검토해보자. 첫째 전통 지키기 차원이다.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장례의식은 달라진다. 국립현충원은 영국인 누구나가 묻히고 싶어 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여기에도 눕느냐 서서 묻히느냐는 구별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문화유산이다(heritage). 국내외의 참배객, 특히 VVIP는 반드시 찾는 명소를 뒤엎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둘째, 군대생활의 마무리는 제대·전역·퇴역 등 형태가 다양하다. 단기 또는 의무 복무로 전역·제대하여 천수(天壽)를 마친 사람은 현충원에 못 들어가고, 대략 30년 전후의 청춘을 바친 장성과 현역신분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젊은 넋들만 안장된다. 이것도 차별이란 말인가? 그것은 제한된 공간이기에,
자유·평등·박애를 내걸고 집권한 프랑스 혁명지도부는, “평등” 이념의 과잉으로 훈장(勳章)을 없앤다. 왕실과 귀족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에 질겁한 주변왕국들의 압박과 공포정치의 피비린내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프랑스 국민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나폴레옹을 황제로 옹립하고, 황제는 거의 전 유럽을 상대로 한 전쟁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하여 그동안 밀렸던 훈장까지 대량생산한다. 그후 프랑스정부가 수여한 훈장 숫자는 세계의 금메달 깜일 것이다. 아니, 더 많은 나라들이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 그리고 공산국가들, 하나같이 독재국가다. 종주국인 소련보다 훨씬 더 평등한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던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훈장은 고사하고 계급장까지 없애려 했다. 정치장교 우선으로 기초체력이 허약해진 중국군은 한층 더 부실해져서, 해장꺼리로 만만히 본 베트남에게 큰 코를 다치고 나서야 계급장을 복원한다. “평등”을 입에 달고 살았던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금언(金言)과 인민을 “공포와 선군정치”로 가두어놓고 굶기고 처형하는 북한 늙은 군인들이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훈장이, “평등을 가장”한 그들의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품이 좀 솔은데, 다른 건 없나요?” “죄송합니다, 아버님. 더 큰 사이즈가 계신데 값이 조금 비싸세요.” 요즘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는 올림말(敬語)”이 화제다.김일성 시신에 참배를 올린 것도 무죄라는 동방예의지국답다. 어르신이 세상을 뜨시면 볕 잘 드는 명당에 모셔 자연으로 보내드리던 동방예의지국에서, 하물며 너나 할 것 없이 환경보존을 외치는 마당에, 시신을 화장(火葬) 아닌 화장(化粧)으로 꾸며 사이비종교의 우상으로 이용하는 김가네에 장단 맞추는 것이 과연 예의인가? 우리는 종교에도 꽤 너그럽다. 임(任)자의 스님에, 스승 사(師)의 목사와 아비 부(父)의 신부까지, 모두 올림말을 붙인다. 신도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사회 안정에도 기여하는 분들에게 당연한 예우요, 세제혜택도 있다. 미국에서도 육체적인 생명을 지켜주는 의사와 사회적 생명의 변호사, 그리고 정신적 생명의 목사는 존경을 받는다. 다만 존경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본령(本領)을 지킬 때에 한 한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의사나 기업하는 변호사는 당연히 사업가나 정치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므로 세상사에 문외한인 종교인이 “제복을 걸친 채”, 잘 알 리도 없는 정치나 사회정책에 사사건건 “잠방이에
고대 그리스의 기록이나 바빌로니아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이들!” 하는 탄식이 나온다고 한다. 사회 초년병시절까지는 본받고 싶은 ‘어른’이 사회의 지도층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 또래가 장성·국회의원이 되더니, 드디어 한참 후배가 시장·도지사다. 비록 벼슬은 못했어도 나이 들면서 보고 들은 것은 있으니, 존경보다는 거슬리고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이 자꾸 눈에 보인다. 해서, 결론은 “요즘 젊은이”다.고 노무현 정권(정부) 당시에도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말의 품격으로 트집을 잡힌 본인은 물론, “바른 말을 그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던 장관으로부터 야당의원의 질문에 극언으로 일관한 총리에 이르기까지, 어렵게 쌓은 공을 입으로 다 까먹은 측면이 없지 않았다. 취임 반년을 넘기면서 실언과 실수가 이어져, 박대통령 정부의 수준이 도마에 오르고, 야당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막말은 욕설이나 비속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개구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 한마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박대통령이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