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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군인의 길 2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27>

 

    “나를 파월장병 사병묘역에 묻어 달라.”는 고 채명신 장군의 유언을 받아들여, 장성에 관한 관례를 깨고 화장을 하여 안장한 일은, 다시 한 번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를 계기로 남들이 못한 일을 실천에 옮긴 고인의 뜻을 살려, 국립묘지의 군인묘역에 “신분의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이 있다.  사후에도 생전 계급에 따라 예우하는 ‘이상한’ 구획조성이요, 나라사랑에도 귀천이 있느냐는 것이다.  웃어넘기기에는 꽤 심각하고 동조하는 분들도 있다하니 이를 검토해보자.  첫째 전통 지키기 차원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장례의식은 달라진다.  국립현충원은 영국인 누구나가 묻히고 싶어 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여기에도 눕느냐 서서 묻히느냐는 구별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문화유산이다(heritage).   국내외의 참배객, 특히 VVIP는 반드시 찾는 명소를 뒤엎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둘째, 군대생활의 마무리는 제대·전역·퇴역 등 형태가 다양하다.  단기 또는 의무 복무로 전역·제대하여 천수(天壽)를 마친 사람은 현충원에 못 들어가고, 대략 30년 전후의 청춘을 바친 장성과 현역신분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젊은 넋들만 안장된다.  이것도 차별이란 말인가?  그것은 제한된 공간이기에, 더 오래 희생한 직업군인을 조금 더 배려하는 마지막 예우일 따름이다.  셋째, 같은 교원·공무원도 근무 연한과 기여도에 따라 훈장을 추서하고, 기업이나 전문직 단체에서도 장(長) 경력자에게는 협회장(葬) 또는 회사장을 한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군 조직에서 일생동안 생명을 담보로 복무하며 공을 세워, 피라미드의 정상에 오른 별들에게 배려하는 것이 과연 차별일까?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치열했던 사흘간의 전투지역에(1863. 7) 세운 전사자들을(남·북군 도합 38,000명) 위한 묘역 봉헌식에서 행해졌다(1863. 11).  국립현충원은 6·25 전쟁에서 월남전까지 대량전사자의 안식처로서, 일제강점기 애국·독립지사의 유해를 모셔와 틀을 갖추었고, 대전에 제2 현충원을 조성하여 묘역을 늘렸다. 

 전쟁 중 폭발적인 전사자 이외에 평상시에는 젊은 사병의 장례가 드물다.  지금은 광활한 사병묘역과 장성, 독립유공자 및 공무원 묘역이 어우러져, 카메라를 매거나 주위 산책로를 걷는 시민의 발길이 사시사철 이어지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다.  적어도 대전은 그렇다.  현충원은 “망자”의 안식처인 동시에, 외국 방문객과 대한민국 수천만의 “산자”를 위한 의례와 교육의 장인 것이다.  이처럼 국립묘지는 시대와 환경이 낳은 “건축·토목 콤플렉스”이며, 우리 현충원처럼 짧은 기간에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스토리 있는 국립묘지”도 세계에 흔치 않다.  국민이 두고두고 감사하고 기려야 할 거대한 기록의 전당이기도 하다.  토목시설에는 배치와 조경을 위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기록물에는 목차와 색인이 있어야 한다.  묘역의 구획은 건축의 설계도이자 기록물의 목차다.  설계와 목차에는 합리적이며 일정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등을 부르짖는 공산국가를 보라,  호화분묘는 고사하고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미라로 만들고, 유리관 속에 꽃단장하여 인민의 충성서약을 받는 성체(聖體)화 한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궁극적인 평등을 맞는다.  따라서 사후에도 계급이 있고 나라사랑에도 귀천이 있느냐는 주장은 옳은 말씀이지만, 이를 국립현충원에 반영하자는 것은 방향이 틀렸다.  과잉 평등의 증거물들을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보지 않는가?

 신분별 묘역 철폐가 채명신장군의 뜻이요 가르침이라는 생각 또한 과잉 해석이다.
 합리적인 규정과 관례가 엄정하기에 파격적인 결심이 더욱 빛나는 것이라면, 이런 주장은 진정한 “군인의 길”을 걸어간 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