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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삼 대 불가사의 3 : 계급사회와 주상복합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48>


   존 포드의 명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1941.”는 격변의 20세기 초 남부 웨일스 탄광촌이 배경이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돌로 지은 6-8 채쯤의 그림 같은 연립주택을 Terrace라고 부른다.  단독주택은 Detached House, 두 집을 잇대어 지으면 Double Detached다.  대부분 영국인들이 이런 집에서 산다.  대도시에서 이따금 ‘고층 주상복합’이 눈에 띠는데, 막 이민 온 노동자 등 극빈자를 위하여 지방정부가 지은 ‘값싼 임대아파트’로, 플랫(Flat)이라고 불린다.

 저 건물에 화재라도 나면 어쩌나 싶더니, 얼마 전에 24층 그렌펠 타워 대형 참사보도를 보았다.  영화 ‘나의 계곡’에서 모건 집안 여섯 부자는 모두 광부인데, 막내(Richard Llewellyn의 자전소설) 만은 광부를 면하라고, 온 가족이 합심하여 학교에 보낸다.  일찍이 잉글랜드의 에드와드 1세가 정복하고(1282), 헨리 8세가 완전 합병한, 웨일스의 석탄은 영국 산업혁명을 떠받쳐준 동력이었다.


   켈트의 나라 아일랜드는 5세기에 성 패트릭에 의해 카톨릭 화 했으나, 잉글랜드 헨리 2세가 침략하여 대군주로서 원격통치를 한다(1171).  명예혁명으로 쫓겨나 망명해온 제임스 2세를 지지했다가, 윌리엄 3세에게 대패하여 무자비하게 보복당하고, 카톨릭 신자는 시민권마저 박탈당한다(1691).  이후 감자농사로 잉글랜드에 식량을 대는 사실상의 식민지가 되는데, 감자기근(1845-1851) 때는 8백만 인구 중 백만이 굶어죽고 백만이 이민을 떠난 슬픈 역사가 있다.  줄기찬 투쟁으로 북부 6개주를 빼고(Ulster) 독립을 성취한다(1922 공화국 수립, 1937 왕권정치 종식하고 에이레로 개명, 1949 공화국 선포하여 영연방 탈퇴).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아일랜드는 산업혁명에 값 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윌리엄 월리스(Brave Heart)의 저항에 힘입어 로버트(de Bruce)가 통합 왕이 된 스코틀랜드도, 결국 잉글랜드에 흡수, 왕국의 일원이 되었다(1707).  단 언제든지 국민투표에 따라 독립한다는 계약은 살아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 Northern Ireland)으로 바뀌었다.  법적으로는 물론 원조 민주국가지만, 왕국이니까 당연히 왕과 귀족이 있는 계급사회다.

 역사적으로 군주제 국가는 정복당한 국가의 포로나 국민이 노예 또는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최하층 계급을 형성하였다.  일찍이 정복당한 웨일스나 아일랜드는 상대적으로 평균소득이 낮은, 사실상 2, 3등 국민과 다름없었다.  주거비용이 살인적으로 비싼 영국 대도시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도시 기층민(基層民)을 위한 주거 해결책이 초고층 주상복합 임대주택이었다.  오랜 세월(5-8백 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현재는 북부만)의 4개 국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로서 절묘한 균형과 안정과 번영을 누려왔다.  이 연합왕국이, EU로서 대량 난민을 받아들이면 그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혼란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우리 생활물가는 비싸다.  거품의 상당부분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심리 즉 베블렌(Veblen) 효과로 본다.  이제 페킹덕의 팬시 스토리와 건강식품 현미의 가격에 끼어 있는 거품 따위는 서서히 벗겨지고 있다.

 주상복합은 지상 2-4층 상업 공간, 5층부터가 주거공간이다.  특히 초고층빌딩은 주거환경과 재난 대처에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 없는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호화’ 상품이다.  아파트 인구가 70%에 육박하면서 폭발하는 인성파괴 현상과 함께,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또 하나의 불가사의다.

                                          
* 에이레는 아일랜드 말로 ‘아일랜드’란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