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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다재다능한 가수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18>

 

    1960년대 대학생들에게 팝송은 생활의 일부였다.  브라더스 포의 그린 필즈나 팻 분의 에이프릴 러브 등 감미로운 멜로디들은 전설이 되었다.  미팅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팝송 몇 곡은 불러야했는데, 필자는 세광출판사의 재즈멜로디 열 몇 권을 외운 덕분에 제법 폼을 잡았다.  빌보드 순위를 줄줄 외우던 동갑나기 외사촌 형이 명동에서 사온 도너츠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앞뒤 한 곡씩인 45회전의 작은 LP판). 

 서울대는 11개 단과대학 대항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을 개최했는데, 초청가수 인기 1호는 최희준·박형준·유주용·위키리의 4인조 포 클로버스였다.  송해 씨 전에 5년간 ‘정-궁-노래자랑’사회로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위키리다.  뒤이어 등장한 통기타 부대가 세시봉인데, 개인 히트곡도 많은 포 클로버스가 오케스트라라면 세시봉은 작은 실내악이요, 인기비중도 그랬다.  부르기 쉽고 듣기 부담 없는 팝송은, 옛 선비의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 치기처럼 여기(餘技)에 가까웠다.  부르는 사람은 전업(專業)가수로서 장래에 확신이 없었고, 우리는 음악 감상실에서 무료로 들으며 함께 흥얼거리는 보너스 개념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네들에게 영원한 아마추어의 매력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샘솟듯 환상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천재 이장희와, 샹송·칸초네·파두처럼 대한민국 고유의 가요를 만들겠다는 큰 꿈을 꾸던 송창식을 제대로 알아본 것은, 그보다 10년쯤 지난 뒤였던가?  당시 필자의 귀에 송창식은 정체불명의(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창법으로 외길을 걷는 개성 있는 괴짜 정도였다.  그중 인기1위는 원로 연극배우 김동원씨의 아들인 김세환.  착한 얼굴에 열심히 부르고,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부드러운 창법 이었다. 

 필자가 존재감을 못 느낀 윤형주는 빼고, 불운한 멤버는 조영남이었다.  모두 다섯 명 중에 음량의 바디감은 베스트였지만, 그것이 화음(트윈폴리오) 만들기에는 오히려 마이너스요 어차피 클래식 수준에는 미달이니, 이도저도 아닌 끼인 신세였다.  서울음대 중퇴라는 프리미엄과, 창(唱) 경력의 대형가수 페티 킴의 맞수(?)로서 존재감은 유지했으나, 작곡자로부터 곡을 못 받아서 ‘내 노래 없는 설음’이 평생 따라다녔다.  너무나 솔직한 원로 영화스타 신성일씨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쓴 것처럼, 조영남씨의 ‘네 가지’ 부족이 작곡자들에게 외면당한 원인의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시봉의 르네상스는 우리나라 통기타 가수들만의 복고가 아니다.  전 세계가 지옥 불에 휩쓸렸던 2차 대전과, 세계 넘버원을 구가하던 미국의 국론을 둘로 쪼갠 베트남 전쟁 사이에, 태풍의 눈과 같은 평화의 시절.  솜사탕처럼 달콤한 멜로디가 앞으로 만나기 힘들 미성(美聲)을 타고 꿀처럼 흘러넘친 시절이었다.  영화계도 시네마스코프로 화려하게 장식한, 할리우드식 순수와 탐미의 마지막 황금시절이었다. 

 곧이어 반전·저항의 거친 숨결이 포크(Folk)송마저 장악하고, 영화계는 국적불명의 마카로니웨스턴과 홍콩 무협영화라는 오락·폭력시대로 접어든다.  갑자기 찾아온 해방의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김일성의 남침은, 사상자 3백만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폐허를 남겼다.  십년이 지나 큰 상처가 대충 봉합되자, 아직은 가난하지만 꿈은 푸르렀던 한국 젊은이들의 메마른 감성에, 감미롭고 이국적인 미국 대중문화 팝송과 영화가 갈라진 논에 빗물처럼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세시봉은 가수라기보다 하나의 ‘시대 현상’으로 남았다. 

 최근에 불고 있는 세시봉의 귀환은 ‘응답하라 60’이요, 올드타이머로부터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트위폴리오와 함께 영원한 아마추어이자 다재다능하고 자유롭던 영혼 조영남을 다시 찾는 것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