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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분노 3: 분노의 악용, 남의 탓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13>

 

   한국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요 평균치의 2.3배라는 사실은 많이들 안다(2012).  왕년에 일본이 누리던 영광(?)이다  복지부에 의하면, 남자·저소득·고령일수록 극단적 선택이 많고, 이유는 정신과 증상·대인관계·빈곤·외로움·질병의 순서다.  정신과 증상은 분노조절장애와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좌절감·우울증 등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 율은 전 국민 평균치의 3배로, 50%에 육박한다. 

 당연히 독보적 세계 1위다.  허허벌판에 장기 연부도 아닌 현찰로 집을 마련하고, 자식 교육에 혼사(婚事)까지 거금을 쓰다 보니, 노후대책도 없는 가운데 청춘은 덧없이 흘러갔다.  국민연금은 용돈 정도요, 불경기에 허덕이는 자식들은 안쓰럽기만 하여 달리 손 내밀 곳이 없으니, 서러운 노인의 자살비율은 높아만 간다.
 
   “노인시민 재교육을 제안한다.”는 J 신문 칼럼을 읽었다(2015. 12).  지하철 승강기 앞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새치기한 노인의 예를 들어, ‘요즘 애들 버릇없다’하지만 실제로 노인의 무례가 더 많단다.  시위 현장에 가스통·쇠파이프 든 사람도 장 노년층이며, 연령대로 보아 노인범죄만 두 자릿수로 늘고 강력범죄 비중도 높아, ‘우리사회 분노의 진원지’가 되고 있단다. 

 다른 건 몰라도 분노의 진원지라는 표현은 극히 주관적·감정적이다.  무슨 일로 논설위원 격에 어울리지 않게 ‘분노’하여 저주를 퍼부었을까?  정동영후보가 자신과 당을 훼손한 노인폄하 발언은, 심한 막말도 아닌 “나이 드신 분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정도요, 그것도 선거운동 중의 말이니 차원이 다르다.  이해를 돕는 의미에서 몇 마디 변명을 해본다. 

 첫째 범죄율 증가는 인구고령화에 따른 모집단, 즉 노인 숫자의 증가를 감안해야 한다.  어제 청년이 오늘 노년이니 상대적인 비율은 배의 속도로 늘어난다.  둘째 고령은 사실상 장애다.  근력·반사 신경이 떨어지고 시력·청력이 저하하여 동작은 굼뜨고 판단이 늦다.  셋째 노인은 몸이 아프고 쉽게 피로하므로, 표정이 어둡고 짜증을 잘 낸다.  넷째 성취동기에 눈높이가 달라 공통 화제(주택 마련, 2세 교육)에 대화가 겉돈다.  다섯째 모두에 언급한 노인빈곤이다.  가난과 재채기는 숨길 수가 없다던가?  성질 급하고 배려 심 부족한 젊은이 눈에는 비 호감으로 비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면서 사회를 발전시켰고, 사회의 공적(公敵) 1호는 조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남의 탓’이다.  히틀러·스탈린·문화혁명 때 마오가 그랬다.  탓의 반대말은 이해·칭찬과 배려다.  노인에 대한 예우에서 얻는 이득을 보자. 

 첫째 약한 노인은 작업속도가 느리지만, 소득 목표보다 일 자체의 성취에서 보람을 찾으므로, 신뢰도와 완성도가 높다.   둘째, 경험의 지혜가 있어서, 알파고의 몬테카를로·상태 공간 트리라는 어렵고 복잡한 변수 앞에서, 경로의 선택에 실수(error)할 확률이 작다.  셋째 장애인에 준하는 배려다.  배려한 사람에게는 엔도르핀이 솟고, 배려 받은 장애인은 특히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한다.  넷째 은혜 갚기다.  노인은 자본·기술·산업인프라가 전무한 황무지에서, 4 대 보험 등 사회안전망도 없는 맨몸으로, 오늘의 자산과 한류의 바탕을 일구었다.  노인에게 인간적인 품위유지를 배려하는 보은은, 자라는 자식에게도 살아있는 교육이다. 

 노인은 최소한 어른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Y 논설위원이 지적한 민주시민 교육은 전 국민의 문제이지, 이를 노인 탓으로 돌림은 사실왜곡이요 해결법도 아니다.  노인을 분노의 배설구로 삼는 것은, 힘겨운 약자를 고독·우울증·자살로 몰아가는 왕따의 갑 질 일뿐이다.  아쉽게 무너져가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 ‘효 사상’의 재건을 가로막고, 패륜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 Brexit가 결정되자 영국의 젊은이들도 노인세대를 원망한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노을을 지켜본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결과를 좌우한 것은 아니다(25-34세 62%가 Remain, 65세 이상 60%가 Leave에 투표).  당장의 고통보다는 멀리보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이런 사안을, 직선제처럼 국민투표에 붙인 것 자체부터 문제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