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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옛 동산에 올라 3 : 좌표(座標) 바로 읽기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00>

 

   추억이란 오랜 세월에 헹궈낸 앙금이어서 엄마 품처럼 푸근하고, 슬픔과 아픔은 머릿속의 지우개로 조금씩 지워져 모난 곳이 없다.  밉던 곱던 그 시절에 가깝던 지인들은 세월의 뽀샵(Photo shop)을 거쳐 선남선녀가 되는 것이다.  19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 쇼 무대는 민스트렐(Minstrel)이 스타였다.  중세 이후 수백 년간 활약한 유럽의 노래꾼에서 유래한 말로서, 백인이 검정 칠을 하고 흑인으로 출연하는 코믹 뮤지컬의 원조다.  영화 ‘Jolson Story: 1946’를 보면 당시 인기를 짐작한다.

 Minstrel 작곡가 Bland가 만든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는, 미국의 슈베르트라는 포스터의 전통에 따른 사투리와 멜로디의 흑인민요다.  평생 허리가 휘도록 노예로 일한 늙은 흑인이, 태어나 자란 버지니아 목화농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포스터(Stephen Foster: 1826-1864) 작곡 “Old Black Joe”에서 조는, “내 마음이 젊고 밝던 시절(when my heart was young & gay)은 가버리고”라며 운명에 순응한다.

 윤석중의 노랫말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로 익힌 “Massa’s in the cold, cold ground.”도 포스터 작품으로, 흑인노예들은 친절했던 백인 주인(massa)의 죽음을 슬퍼하며 오열한다.

 

   인간 이하로 살아온 흑인노예가 피땀을 흘리던 목화밭·옥수수 밭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것이다.  추억의 ‘스톡홀름 신드롬’ 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 끝에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화의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딘 서울올림픽의 해 1988년, 이보다 더 “좋았던 그 시절”이 또 있을까?  ‘응팔’은 이문세·신해철 등 그리운 노래의 오선지위에, 추억의 소도구들로 장식한 그림 스무 폭을 그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쌍문동 골목길에 걸어놓은 소박한 전시회다. 

 영화 ‘오빠생각’은 국민 정서에 한 부분으로 녹아든 보석 같은 동요를, ‘맘마미아’처럼 꾸민 일종의 죽 박스(Juke Box) 뮤지컬이다.  전쟁과 죽음과 지긋지긋한 가난, 어렵게 삶을 꾸려가는 고아들과 국가도 돌보지 못한 상이군인 갈고리(이희준)처럼 막가는 인간군상, 그 가운데 상생과 화합과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합창을 가르치는 한 중위와 안락한 미국생활을 버리고 자원봉사에 나선 여선생 박주미(고아성)...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아름다운 합창의 여운(추억)에 잠겨 한동안 좌석을 뜨지 못한다.

 

   IT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가 된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살인적인 실업과 자산 가치 폭락의 경제위기, 파렴치한 IS와 평양발 폭력의 공포, 뒤따르는 불안과 우울증, 맹목적인 증오와 분노조절장애 등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폭발하는 현상은 재앙 이다.  아프리카 흉년을 북미대륙 풍작으로 메꾸던 보상은 사라지고, 마치 예비부대 없이 전 병력을 올인 한 최후의 결전장이라고나 할까?  IT 강국(?) 한국에는 근거나 확인 없이 사람을 생매장하는 인터넷의 집단 이지매와, 분노가 제동 없이 분출하는 존비속 살상과 보복운전, IMF 이후 급격히 벌어진 양극화의 사생아 3포 세대 문제가 시트콤처럼 줄을 잇는다.  그래도 세계는 한류 드라마에 열광하고, 헐리웃에서 소재와 인력을 찾아 서울로 온다.  미국 방송사는 예능프로 포맷을, 중동의 병원은 서울대병원 운영시스템을 사 간다.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는 개도국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소프트웨어에서도 앞서는 저력은, 바로 파괴와 좌절을 디디고 일어선 우리의 풋풋한 경험 덕분 아닌가. 

 자부심을 갖자.  추억에 잠겨 한탄하는 옛 동산은 무력감과 현실도피의 좌표다.  마약에 취하듯 패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응8과 오빠생각의 감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재점검하는 계기로, 희망찬 재도약의 도움닫기 발판으로 삼자.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