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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옛 동산에 올라 1 : 응답하라 88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98>

 

   TV 드라마의 초창기 60년대에는 성우 출신 탤런트가 잘 나갔다.  동시녹음이 아니라 성우 목소리에 의존하던 영화배우가 쩔쩔맬 때, 대사부담이 없는 성우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한류 드라마’는 지구촌 곳곳을 점령했지만, 지나친 ‘막장’ 경쟁으로 비난도 빗발친다.

 종편방송 출범으로 시장이 커지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소위 건전드라마 ‘응답하라 88(응팔)’이 최고시청률 19.6%에 15초 당 광고단가 3천만 원대로 치솟아 지상파방송을 추월하고, 아이돌 특히 걸 그룹 멤버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어리고 연기 경력도 짧은 이들이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내공이다.  이르면 초등 때부터 혹독한 연습생 훈련으로 동작과 표정연기에 익숙하다.  둘째 연습을 통해 무대공포증(카메라 울렁증)을 자연스럽게 극복하여, 카메라가 무섭지 않으니, 60년대 성우들처럼 연기에 쉽게 몰입한다.  셋째 화면해상도가 SD에서 HD로 발전하자, 작은 주름살도 놓치지 않는 카메라 앞에서, 옛날 식 피부 관리나 성형시술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선명도(鮮明度)의 극치라는 UHD(Ultra High Definition) 방송이 시작되면 ‘젊음 선호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응답’시리즈 제3탄인 ‘응팔’은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 출연진 거의 전부가 CF나 연예프로에 초대받았고, 그 중심은 성덕선(걸스데이 혜리)이다.  스카웃 계기는 한 예능프로에서 혜리의 애교를 보고 필이 꽂힌 감독 덕분이라고 한다.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처럼 싹둑 자른 단발머리에 볼 살에는 소녀의 애티(Girl Fat)가 채 가시지 않았고, 호탕하게 웃으면 얼굴 절반이 입이다.  거침없는 걸음걸이에 수시로 터지는 너털웃음 소리까지, 말괄량이(Tomboy)의 덤벙대는 몸짓은 귀여운 푼수다.

 그러나 생얼에 어깨가 축 처진 구박 덩어리 둘째 딸은, 짧은 스커트·꽉 끼는 블라우스에 립스틱과 아이라인으로 무장한 요즘 여고생과는 달라서, 어른을 위하고 소외된 친구를 배려하며 부당한 처사에 당차게 달려들 줄도 안다.  그러니까 응팔은 지금은 사라져 볼 수없는 것들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파는 ‘추억장사’다. 

 시트콤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주변 소품에 집착하고, 성장소설 치고는 악역도 기둥 줄거리도 없이 푸근한 에피소드를 모은 짜깁기다.  팔을 고이고 비스듬히 누워, 긴장도(緊張度) 제로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1988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40주년이요, 5·16 이후 4반세기 만에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 행군을 시작한 원년이다.  잘나가던 박정희식 개발경제의 고속성장이, 두 차례 석유파동에 말리면서 중화학공업 과잉투자의 해법을 찾지 못하여 비틀거리다가, 1979년 10·26 사태를 맞았다.  기회를 틈타 부도덕한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대통령의 5공은 정치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운 좋게도 유능한 경제 참모와 저유가·저금리·저환율의 ‘3저 호황’에 힘입어, 재정과 무역수지의  쌍둥이 흑자를 달성하며 사상 최고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다.  저축률 36%로 중산층이 늘고, 두발과 교복 자율화·야간 통행금지 폐지·해외여행 자유화와 프로스포츠 탄생, 그리고 88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때다. 

 1987년 뉴올린즈 교정학회에 참석한 다음 몇 개 도시를 관광했는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Rich Korean!”하며 윙크하는 가게주인이 많았다.  결국 88올림픽 직전부터 시작하는 ‘응팔’은, “좋았던 그 시절”을 그리는 복고지향의 문화상품이다.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는” 삭막한 동산에서, 과거를 더듬으며 스트레스로 황폐해진 마음을 달래는 일종의 ‘힐링’ 같은 것 말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