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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생각 갈무리 5 : 편견 바로잡기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93>

 

   샹송(chanson)은 현대 프랑스의 대중음악, 주로 서민의 노래다.  국민성을 닮아 다양하지만, 멜로디는 이탈리아처럼(canzone) 너무 밝거나 포르투갈처럼(fado) 애처롭지 않고, 일상의 대화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역으로 푸근하게 낭송(朗誦)한다. 

 그 위에 특유의 비브라토와 비음(鼻音) 섞인 노랫말이, 일단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성과 이국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바로 이 매력 포인트가 절대음감, 나아가 클래식 음악과 친하기 힘든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는 이탈리아나 독일, 심지어 오스트리아보다 훌륭한 작품이나 뛰어난 작곡가가 적고, 공연장이나 교향악단의 지명도도 뒤떨어진다, 라는 생각이 필자의 편견이었다.

 

   대한민국을 한 단계 올려놓자는 ‘88 서울 올림픽 전야, 온 나라가 관광객 유치에 한편으로는 북한 테러 위협에 잠을 설치는 시점에, 흘러간 프랑스 육체파 배우 브리짓 바르도의, “개를 먹는 국민” 발언이 재를 뿌렸다.  당연히 이에 맞선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다.  영화의 원조이면서도 스크린 쿼터의 울타리 뒤에 숨어 국산영화를 보호하고, 이에 편승한 배우·감독은 평생 기득권을 즐기는 나라.  훌륭한 작품도 많지만 화려한 구도나 스피디한 액션보다, 토크쇼처럼 웬 사설을 그리 길게 늘어놓는지.  종교개혁을 겪지 못한 카톨릭 국가이면서, 정치지도자 중에 정부(情婦)나 혼외자식은 보통이고, 심지어 성적소수자까지 용인하는 나라.  이렇게 치부(恥部)만 들추다보니 개인적인 편견만 점점 더 굳어졌다. 

 지난 9월 어느 날 파리를 떠나 융프라우로 가는 열차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차창밖에 전개되는 농업국 프랑스의 농촌풍경.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구릉(丘陵)에, 밭과 목장들이 하나같이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이 나라에는 젊은이들이 농토를 지키는 사랑의 손길이 아직 남아있구나.  ‘農者天下之大本’이라면서 80 넘은 노인들만 남아서 잡초가 웃자란 우리의 농촌.  영화 ‘황야의 7인’에서 총잡이가 되고 싶다는 농부의 아들을 타이르던 율 브린너의 대사가 생각난다.  “비겁해 보이지만 땅과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 아빠의 용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란다.”

  몇 년 전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와인의 종주국을 자임하던 프랑스가 캘리포니아 포도주에 완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그래봤자 술인데 ‘신의 눈물’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더니...   그러나 생각해보자.  포도주에 배인 긴 세월의 역사와 정성, 백보 양보해서  포도밭을 지키는 농민과 농산물을 프로모션 하는 거국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닌가?
 벼농사에 직불제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생산적이며 부러운 농업 진흥책이다.

 

   차창 밖의 풍경 하나가 프랑스에 대한 해묵은 편견을 씻어내어 생각이 바뀌는 ‘자기수정(自己修整)’의 시간이었다.  생각의 갈무리는 단순히 기억의 조각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이들이 서로 대화하고 새 정보를 받아들여 자기수정을 계속하는, 언제라도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라야 한다.  백낙청 명예교수가 창비(創比) 편집인에서 은퇴하면서, 또다시 작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을 감싸 안았다.  고슴도치는 귀엽더라도 가시는 아프다.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언어의 유희’로 얼버무리는 것은, 혹시 시험답안 커닝(cheating)과 창작 훔치기(plagiary)를 혼동한 ‘노안(老眼)성 착시현상’은 아닌지.

  대학교에서 사고의 방식(思索徑路)을 가르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수정의 마스터키”를 쥐어주기 위함이 아니던가?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에게 1점을 준 프랑스의 심사위원 앙트르몽도, 백낙청 교수도, 뒤늦게나마 머릿속의 만능열쇠 사용법을 되새겨봄이 어떨까?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