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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생각 갈무리 4 : 선입견(先入見)의 기원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92>


   조성진의 쇼팽은 TV를 통해서도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콩쿠르 우승이라는 후광효과 뿐만은 아니다.  안방의 판단은 현장의 열기에 휩쓸리지(masking) 않아 보다 냉정하니까.  이 연주에 1점을 준 프랑스 앙트르몽 심사위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첫째, 천재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지만 왠지 바디 감(무게)이 약하고, 과외수업 모범답안처럼 매끄러워 개성을 엿보기 어렵다.  둘째, 절대평가가 아니라 연주자 끼리 상대평가이므로 10점 만점에 1점은 문제되지 않는다.  셋째, 문화와 예술의 중심인 프랑스 대표로서, 누가 뭐래도 내 판단은 옳다.  이상 세 항목을 풀어보자.  첫째 콩쿠르는 원숙한 비루투오소에 대한 평가가 아니므로 16-30세의 연령제한이 있다. 

 디캔터에 붓고 10분여를 숙성시켜 와인의 깊고 독특한 맛을 음미하는 소믈리에가 아니다.  둘째 입상권 수준의 연주는 문외한이 들어도 어딘가 달라서, 아무리 상대평가라도 과락점수는 넘어야 옳다.  셋째 파리가 세계의 예향이라는 전제는 맞지만, 그 말이 과연 모든 파리지엥에게 통할까?  ‘감성의 개입’이 의심되는 이유다.

 

   프랑스인에 대한 필자의 선입견을 고백한다.  GNP도 독일은 주변 국가를 의식하여 깎고, 프랑스는 라이벌 독일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부풀린다는 근거 없는 의심 따위다.  시작은 드골대통령.  독일의 구데리안처럼 기갑전을 예언한 유능한 군인이요, 독일에 항복을 거부하고 런던에 망명, 프랑스의 해방과 영광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다.  나치 패망 후 임시정부 수반을 거쳐 정치적 이유로 은퇴했다가, 10여 년 뒤 컴백, 제5공화국을 창건하였다. 

 그는 나치에 맥없이 무너졌다는 수치심과, 망명 및 임시정부시절 승전국에게 홀대(忽待) 받았다는 자존심의 상처(?)와, 영국 대 유럽대륙 간 전통적인 외교전쟁 등의 이유 때문인지, 매사에 독불장군이었다.  예컨대 마샬 플랜의 원조는 받으면서 NATO 의무는 거부하고, EC(1967, EU의 모태)를 창설하였으며, 국제여론에 반하여 핵 개발을 강행하였다.  물론 민족주의자로서 프랑스의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은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  “갈리아인은 용맹하나 툭하면 서로 싸우고, 복속한다는 약속을 자꾸 뒤집어 신뢰할 수가 없다.”는 글은 필자의 선입관을 더 굳혀주었다.  드골(de Gaulle)의 골은 바로 갈리아(Gallia) 아닌가. 

 그 다음은 제국시대 약탈 문화재의 반환.  세계의 추세는 장기대여 형식으로 속속 돌려주고 있지만, 프랑스는 TGV사업이나 에어버스 구매와 같은 ‘굵직한 거래’에 연계해야만 비로소 내어 놓는다.  직지심경도 부지하세월 아닌가?

 

   오만·신뢰도·약탈문화재 같은 역사를 떠나 문화와 예술, 본론으로 가자.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수상자 마리 퀴리는(2회) 소르본느 교수였지만 폴란드 출생이요, ‘이방인’의 까뮈가 나서 자란 고향은 식민지 알제리다.  영웅 나폴레옹이 태어난 해(1769)까지 코르시카는 이탈리아 제노아공화국 영토였고, 그는 어눌한 프랑스어 때문에 학창시절을 외톨이로 지냈으며, 쇼팽이야 말로 폴란드인으로서, ‘조국의 흙’ 한줌을 평생 간직하지 않았던가. 

 프랑스는 가장 먼저 로마에 정복당하여 문명세계에 편입된 역사를 자랑하고, 근세 서구문화의 중심지로서 유럽의 인재들이 모여들어,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꿈의 무대가 되었다.  누구든지 어떤 괴팍한 개성이든지 다 받아주는 열린 톨레랑스와, 역사와 전통을 아끼는 풍토는, 인류의 귀한 자산으로 자타가 인정한다.  그렇게 수많은 철학자·작곡가·문호 특히 전설의 화가를 탄생시켰건만, 정작 본국출신 스타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감성과잉’ 탓이요, 이것이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오심(誤審)으로 나타난다, 라는 것이 필자의 선입견이자 편견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