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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생각 갈무리 1 : 쥐덫과 사색의 경로(思索徑路)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89>

 

   “런던에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쥐덫(Mousetrap)’이 신기록을 세우며 공연 중이라지만...”   개업 첫 해에 대전일보에 기고한 칼럼 ‘추리 극’ 첫 구절이다(1979).  이 연극이 63번째 생일을(1952. 11. 25) 맞아 세계최장기록을 갱신했다.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007 시리즈 첫 영화 ‘Dr. No’가(1962) 생각난다.  첫 장면이 킹스턴(Jamaica)대로를 걷는 세 맹인(Chigroe: 중국계 흑인)인데, 배경으로 나오는 노래가 ‘눈먼 쥐 세 마리(3 Blind Mice)’, 즉 쥐덫의 원작인 라디오 드라마(1947) 제목인 까닭이다.  작가 플레밍이 아니라 감독(Terence Young)의 아이디어로 안다.

 포켓북으로(Signet 1962) 읽은 직후에 본 탓으로 감흥은 덜 했는데(소설보다 나은 영화를 봤는가?), 판권은 1958년도이다.  사고과정(Thinking Process)을 주목해보자.  “단막극 쥐 세 마리 – 연극 쥐덫의 히트 – 소설 속 세 사람의 눈 먼(假裝한) 범인 – 영화 배경에 노래 ‘쥐 3마리’를 삽입”, 이렇게 상품가치를 올린 007 영화는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반세기 동안 총 23편의 흥행작으로 이어졌다.  집이 좁아 많이 버렸지만, Christie와 Fleming을 비롯, 버로즈의 타잔·화성 시리즈 및 McLean·Le Carre· Spillaine·Deighton·Ambler 등 주로 예과시절에 읽은 낡은 스릴러 포켓북을 차마 버리지 못하여, 추억의 소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교수들이 강의하기가 겁난다고 한다.  아차, 한마디 실수하면 즉시 무한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뒤져, 학생들이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러다가 교과서(인쇄 정보)는 물론이고 강의실(학교)까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할 정도다.  등록금은 의 치대 전문대학원과 로스쿨만 비싼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사립대는 평균 $8,554로 미국에 이어 2위요, 국립대는 미국·일본 다음으로 3위, $4,773이라고 한다.  물론 공개된 나라 중에서 구매력지수로 환산한 액수이기는 하지만,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받는 대가로는 너무 아깝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탈무드처럼, 지식획득보다는 지식을 얻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을 고등교육의 목적으로 바꾸어야한다.  사색의 과정을 배우고 발표와 토론 방법을 익히는 것, 최재천 교수는 이것을, “대학 문을 나설 때에 손에 마스터키를 쥐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색과 토론의 능력을 키우려면 다량의 단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그 생각을 숙성과 발효를 거쳐 차곡차곡(Indexing) 저장해야 한다.  따라서 고전적으로 보고 듣고 읽어서 암기(暗記)해야 할 필요성은 과거보다 더 절실해졌다.  다음으로 두뇌의 한계 때문에 한 우물만 파는 집중력은 물론이요, 우물 밖의 얕고 광범위한  지식도 챙겨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학습의 중요성이다.  중고가 아닌 생생한 정보는 정확하고 입체적이며, 현장에는 필요할 때 기억해내 줄 열쇠 즉 냄새나 빛 또는 열기(熱氣) 같은 병행요소가 있다.  또한 비록 초점거리 밖에 있어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주변시야(Peripheral Vision)에 포착되어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훗날 깊은 사색 즉 연산 내지 연상 작업을 할 때 갑자기 튀어나와 효자노릇 해줄 잡다한 자료도 있다.  그 집합체가 바로 수월성(秀越性)이요, 이런 브레인들이 모여 토론한 끝에 창조를 낳는다. 

 진화의 열쇠는 돌연변이에 있다고 한다.  지식의 돌연변이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의견의 교환 – 충돌 – 합의라는  토론과정, 즉 ‘브레인 스토밍’에서 얻는다.  토론이 없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은 생산성 제로인 학문의 근친교배만 낳는다.   발 묶는 쥐덫이요 뛰어봤자 제자리인 다람쥐 쳇바퀴(Rat Race)다.

 

‘세 마리 눈 먼 쥐’는, 크리스티가 메리 왕대비의 소원을 받아들여 1주일 만에 썼다는 단막극이다.  과연 추리극의 천재답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