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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통일의 기운 5 : 조언(助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84>

 

   제2차 세계대전 역사에 소련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주장이 있다.  일리는 있지만 대부분은 이념을 밥줄로 삼던 학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히틀러에게 슬라브 족은 유태인처럼 하급 인종(Untermensch)이요, 공산당은 바퀴벌레보다 먼저 박멸할 인류의 적이니, 두 조건이 딱 들어맞는 스탈린의 소련은 바로 숙적이었다.  히틀러는 영국 정복을 뒤로 미루고 소련을 침공하였으니, 승패에 앞서 혐오의 대상이던 소련인민에게는 그야말로 생존이 걸린 투쟁이었다. 

 비밀에 쌓여 정확치는 않으나 소련의 전사자 750만은, 한 달을 못 버틴 프랑스 20만 영국 27만, 늦게 참전한 미국의 40만(태평양전쟁 포함)에 비해 엄청나다.  패전국 독일(290만)의 2배가 넘지만, 그 숫자는 스탈린 손에 죽은 소련인민보다는 작을 것이다.  몇 천만의 인민, 특히 군의 핵심인 장교 수천 명을 숙청한 스탈린 군대는, 지휘관을 잃은 오합지졸로서 초전박살을 당했다.  소련에 올 인한 것은 히틀러의 선택이요, 소련 역할이 컸다기보다, 연합군 전쟁노력의 대부분이 결국 “소련 살려주기”였다.  전후 독일에서 돌아온 2백만 소련군 포로의 뒤 소식은 알 길이 없다.

 

   넓은 영토와 큰 인구에 교통(도로·철도)·식량·무기체제가 원시적이고 문맹률이 높던 소련은, 총동원(Mobilization) 과정에서부터 전투력에 심한 손실을 자초한다. 

 국회 동의가 없어 참전하지 못한 미국의 루즈벨트는 엄청난 원조로(무기대여 법) 소련을 돕는다.  스탈린의 요구는 빗발치고 미 군수산업은 피크에 올랐으나, U 보트와 거친 북해항로로 인하여 물자 수송은 악전고투였다.  소련 공장도 미국원조에 힘입어, 종전 직전에는 무적의 T-34 탱크와 카투사 다연장 포를 양산할 만큼 성장하고, 우수한 미국제 통신·수송 장비는 승리의 견인차였다. 

 베를린 함락 작전에 스탈린이 주코프와 코니에프에게 무모한 경쟁을 시키지만 않았어도, 부상병후송과 치료, 물자보급과 인간다운 처우에 조금 더 노력했어도, 전사자 수는 반 이하로 줄었으리라.  소련이 총포 구경을 영미나 독일보다 약간 크게 만든 것도, 남의 포탄은 주워서 쓰되 남은 내 포탄을 못 쓰게 한다는 잔꾀로서, 정확도는 불문하고 그저 빵빵 터지면 그만이라는 공산국가다운 비능률과 인명경시(人命輕視)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연평도에 쏜 포탄의 절반은 바다에 떨어졌다고 한다.  전사자 숫자를 들어 소련의 역할을 과대 포장하려는 학자들에게 곡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황병서국장은, “남조선 당국은...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북측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8·25 합의에 초를 치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남한의 2, 30대 젊은이들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위(自衛)용이 아니라 누구를 겨냥하는지를 알고, 하루를 못 넘기는 거짓말은 대내용·보고용이기에, 인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우민화 정책이 무너질까봐 확성기를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안다.  21세기 IT시대에 정보의 범람(flooding)은 시간문제로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다.  흐루쇼프가 반세기도 전에 매도(罵倒)한, 인명을 소모품으로 보는 독재와 낡은 이념의 폐쇄체제가, 21세기 한반도에 남아있다니... 

 서둘러 발상을 전환하라.  끝까지 버티면 제2의 가다피·차우세스크가 될 수 있다. 

 만약에 ‘민족의 점진적인 평화’를 향하여 변화를 추구한다면, 북조선 집권층이 과거 저지른 잘못을 끝까지 문제 삼을 남조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통일조국에 설립자(founders)의 한 사람으로서 영원히 이름을 남긴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