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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문단의 화제 1 : 문예창작과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81>

 

   1960년대에는 대학 수가 적고 진학률도 낮아 대학생들의 자존심이 꽤 높았다.

 등록금 비싼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 시골에서 소나 논밭을 팔아 등록금을 대니,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생겼다.  뒤집어보면, 아직은 상아탑(象牙塔)이니 등용문(登龍門)이라는 우아한 어휘가 유효하던, 가난해도 희망을 향하여 달리던 시절이기도 하다.  청량리 하숙집에서 경희대 국문과 학생과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학생이 만나 한 쪽이, “한국외대 부속 경희학원” 하면 “경희대 병설 외국어과”라며 받아치는 약 올리기 입씨름이 일쑤였다.  당시 SKY를 빼고는 어느 대학이던 서로가 지지 않는 맞수였는데, 드물게 예외적인 존재가 바로 서라벌예대였다. 

 특히 문예창작과는 소신지원의 고고(孤高)함을 자타가 인정하였다.  명문 인문고교 학생이면 열에 두 셋은 철학서를 뒤적이고 예능(경박한 TV예능이 아님)을 존중하던 시절이라서, 열정과 천부적 재능을 갖추고 취업전선에서 라이벌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를 인정했던 것이다.  어느덧 서라벌의 문창과는 중앙대에 합병되고, 모두 60 군데이던 문창과가 다시 40여 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문창과는 한국문학의 사관학교로서 쟁쟁한 문인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평생학습의 중심으로서 주부·은퇴자들의 문화의식과 우리말의 업그레이드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우리 또래는, “오늘날 한국 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문예창작학과 때문”이라는, 소설가 황석영씨의 진단에 경악한다.  “글 쓰는 기술을 가르쳐서인지, 최근 작가들은 서사와 세계관이 모자라 작품에 철학이 빠져있다”며 문학상 본선에 올라온 작품이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동국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까닭을 설명하다가, 문창과에 대한 평소의 입장을 밝혔다는 것.  좀 길지만 원문대로 인용한 이유는 흔히, “큰 문맥을 보지 않고 한 대목만 따 와서 시비를 건다.”는 불평을 피하기 위함이다.  문제점을 찾아보자.

 첫째, 4년제 대학은 전문 과목의 입문과정일 뿐이다.  지도교수 밑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쳐야 독립적으로 연구할 자격을 인정한다.  더욱이 당시에 특정 종교재단 대학의 철학과는, 자타가 한 팔 접어주던 서라벌 문창과와는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둘째, 시나 회화, 작곡 등 창조 예술은, 즉흥적인 감성과 천부적 재능이 전제이니, 정형화 된 틀에 가두지 말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한 단계 높은 시민·문화인을 키우는 교육과정에, 가장 중요한 기간을 왜 그래머 스쿨이라고 부르는지, 꼭 설명을 해야 아나?  신(神)이 내려도 별도로 수업을 받아야만 비로소 무당으로 홀로 서는 이치를 모르는가? 

 셋째, 서사(敍事: narration)의 트로이카는 조정래·황석영·최인호였다.  소설의 한 단면 내지 장르로 볼 수도 있는 이야기꾼(story teller) 말이다. 번뜩이는 재치나 천재성보다 집념과 끈기로 승부한다.  그 위에 예술의 일반적인 속성에 속하는 좌편향이 강할수록 강렬해지고 쓰기 쉽다.  그러므로 서사와 세계관, 즉 철학의 빈곤을 문창과의 탓으로 돌림은 비겁하고 불공평하다. 

 넷째,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이란다.  야누스의 일체성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동전의 한 면은 상징물을 다른 면은 액면가를 표시한다.  상징물이 중요할수록 발행·사용량이 많은 액면을 뜻한다.  황 작가는 열등감과는 거리가 멀 테니, 문제의 발언은 기술(arts: 액면)은 승하되 내용(contents: 철학)이 따르지 못함을 강조하려다가 나온 실언으로 받아들이자. 

 

그러나 문학의 침체는 여전히 문창과 탓은 아니고, 신문보다 TV, 소설보다 영화, 클래식보다 뮤지컬을 선호하는 세태의 흐름,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황 작가는 언제쯤 프로방스에 밥집을 개업하는가?  박대통령 임기가 이제 반도 안 남았는데...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