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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어용(御用)의 자유 2 : 지옥의 묵시록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80>

 

   토마스 해리스의 Red Dragon 시리즈는, ‘맨 헌터(1986)’로부터 ‘한니발 라이징(2006)’까지 계속 영화화 되고, A. 홉킨스와 J. 포스터가 출연한 ‘양들의 침묵’이 대박을 터뜨려, 사이코패스·연쇄 살인범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한니발은 피해자의 숨을 끊는 순간 신(神)이 된 듯 착각과 희열을 느낀다.  생명을 창조할 수 없지만 뺏을 수는 있다는 이상심리에서, 우간다의 이디 아민처럼 초인적인 힘을 얻겠다고 인육까지 손을 댄다. 

 조직결속을 위한 것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우리 범죄사에도 지존파가 있다.  신부가 되려던 스탈린은 권력투쟁 때부터 수천만을 숙청한 ‘인간백정’이었다.  종전 후 독일수용소에서는 귀국이 두려워 자살하는 소련포로가 속출하고, 스탈린은 마지못해 받아들인 2백만 명을 시베리아에 분산시켜 자동해결(?) 했다고 한다.  귀국이 두려운 이유는, 첫째 독일 포로생활이 소련의 일상보다 풍요했고, 둘째 죽지 않고 포로가 되어 조국을 배신했다며 처형당할 걱정, 셋째 비록 적국 수용소지만 자유를 경험한 포로들이 돌아와 잘 길들인 인민을 오염(?) 시킬 우려 때문에, 스탈린이 살려둘 리 없다는 점 등이다.  소련 전사자는 750만인데 부상자 통계가 없는 것도 신기하다.

 

   이차대전 중 미영독불 네 나라의 부상자는 전사자보다 조금 많거나 2배쯤인데, 이 당연한 공식이 일본에는 통하지 않는다.  240만 사상자 중 부상은 약 10%로 거의 다 전사했다.  무슨 뜻일까?  미군의 오키나와 점령이 완료되는 시점에, 천황을 잘 모르는 원 주민들이 집단 자결을 했고, 그것이 일본군의 강요와 설득의 결과라는 많은 증언이 있다. 

 대일본제국의 종교는 신도(神道)요 천황은 살아있는 신(現人神)이다.  명에 의하여 스스로 배를 갈랐다(하라키리: 割腹).  고통을 줄이려고 옆에서 목을 쳐주는 아름다운(?) 의식은 무사도의 꽃이었다.  신판 극우의 원조 미시마 유키오, 신경숙이 베낀 ‘우국’의 작가도 그렇게 죽었다.  천황과 제국을 위하여 죽은 신민(臣民)은 신(軍神)이 된다.  지하드 식 황홀한 사후세계에, 덤으로 군신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성스러운 전당, 신사까지 준비해두었다.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남자(무사)의 로망이었다. 

 이쯤에서 한번 따져보자.  보통의 살인은 우발적이다.  연쇄살인은 계획적이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저지른다.  절대 악인 인간백정이나 인종 청소의 집단학살은, 이념·혁명·민족이라는 가림 막 뒤에서 벌어졌다.  천황에게 신성(divinity)을 부여한 현인 신의 원시종교와, 칼이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군국주의 공권력이 결합하면,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무법의 묵시록이 완성된다. 

 무한팽창으로 질주하는 침략근성과 무의미한 대학살과 무고한 비전투원의 집단자살과, 전사자 214만·부상자 24만·포로 없음(끌려온 식민지 출신 제외)이라는 전사(戰史)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모든 것은 천황폐하를 위하여!”라는 명분 아래 저지르는, 브레이크 없는 반인류적 범죄의 종결자다.

 

   천황은 패전과 동시에 ‘인간선언’을 하고, 야스쿠니를 국가관리에서 종교법인으로 독립시켰다.  ‘신성’을 포기하고 전범재판을 모면하였다.  군대 해산으로 ‘군국주의의 종식’도 선포하였다.  극우파는 “죄 값을 치른 A급 전범들은 죽어서 군신이 되었으니, 신사로 모시는 것은 국내문제다.”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미시마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앞서 말한 선언과 선포 이전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어용 언론’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심이다.  아니, 의심이 아니라 진심(本音)을, 아베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는 비인간·반 인류의 인명경시가 휩쓰는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는 보거나 겪고 싶지 않을 뿐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