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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칼럼 쓰기의 어려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75>

 

   조선일보 칼럼 ‘조용헌 살롱’이 1000회를 넘겼다.  2004년 시작하여 11년, 고 이규태씨에 버금가는 업적이다.  그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속옷만 입고 링 위에 올라 결투를 벌이는 일”이라고 했다.  글의 수준을 유지하려고 술·담배를 피하여 생활리듬을 지켰고, 소재를 찾는 촉(觸)을 살리려고 연중 절반은 발품을 팔았단다.

 전공(동양학)을 기반으로 현대사회나 현상을 해석하는 일은, 짐을 절반쯤 덜어주는 반면에 글이 상투화(常套化)하기 쉬우니, 결국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이런 분들과  견줄 바가 아니지만, 필자에게는 사실(fact) 확인이 더 어렵다.  년도나 액수 같은 숫자는 물론, 인물을 착각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건 내용을 반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문제는, 말은 “아차, 실수!”로 웃고 넘어가지만, 글은 물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쌓은 공(?)은 어디로 가고, 멀쩡한 사람이 순식간에 멍청해 보인다.  아무리 잘생긴 미남미녀도 앞니 하나 빠지면 코미디언으로 변하지 않던가.  그래서 누군가 빨리 지적해서 정정할 기회가 주어지면 정말로 고맙다.

 

   건명원(建明苑)에서 열리는 KAIST 교수들의 강의는 감탄 불금이다.  교양강좌를 해본 사람은 안다.  특히 김대식교수의 Big Data와 Google 이야기는 정보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명 강의였다.  그러나 조선일보 칼럼 “쓰레기장에서의 휴가”에 쓴 “momento mori, 중세기 유럽의 교훈!”은 옥에 티다. 

 로마 황제 앞에서, “죽음을 기억하라, 당신은 신이 아니다!”를 일깨워주던 원문은“memento mori”다.  서로마제국의 멸망(476)으로부터 기산(起算)하는 중세에도 이 전통이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원이나 통념에 어긋난다.  전기·전자공학과 김교수에게 전공이 아닌 어원이나 철자의 착각은, 오류라기보다 애교로 넘길 수 있지만, 없었던 일만은 못하다.  

 전통 깊은 ‘백 북스 클럽은, 백 권의 양서를 읽고 토론하며 독후감을 나누자는 교양과 지성의 모임이다.  석학이나 명저의 저자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데, 언젠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강의‘통섭(consilience)'을 듣고 안목을 넓힌 바 있다.

 지난 해 봄 역시 조선일보에 실린 최교수의 “내 마음의 명문장”은, 일본 노벨상 작가인 가와바타의 ’설국(雪國)’ 도입부를 극찬한다.  내용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일본인 동료에게 우정 직역(直譯)을 부탁하여 감동을 얻었다는 첫 문장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에서, 이 글을 쓰던 당시 니가타는 행정구역상 현(縣)에 지나지 않으니 현경이라고 써야 옳으나, 독자를 단번에 ‘눈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하여, 조금 무리하게 ‘국경’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추정한다. 

 일본어를 독학하던 40대 초반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에 왜 쿠니(國)를 쓰는지 궁금했다.  야구나 스모 중계에서 아나운서가 선수의 출신지를 꼭 밝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의문은 곧 풀렸다.  메이지 유신까지 7백 년 간의 막부시대...  막부가 봉하여 다이묘가 지배하는 봉건시대의 영지(領地)가 쿠니요, 인구나 쌀 소출량이 국력(동원 가능한 병력)이니까 허락 없는 이동은 곧 죽음을 의미하며, 자의반타의반 영지 내의 소속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옛 시절 니가타는 에치고 쿠니(越後國)였으며, 가와바타의 ‘국경’은 지극히 정상적인 서술인 셈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필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주 나제(羅濟)통문을 연상했으니...

 “다른 나라에 들어선 느낌”을 돋보이려고 에둘러 국경으로 표현했다는 발상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출발이 선의요 착상이 감성적·천재적이니, 꿈보다 해몽으로 그냥 넘어가자.  다만 한 가지, 필자라면 일본인 친구보다 일본어를 잘 아는 한국인에게 직역을 부탁했으리라.  이 또한 선택의 문제지만...   어쨌든 석학들도 이러할 진데,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사실 확인이 아닐까 한다.

                                      

                 ■ 쿠니는 나라國이지만 일본에서는 아시다시피 약자, 네모 안에 구슬옥을 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