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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페미니스트 3 : 처첩과 정부(情婦)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67>

 

   미국이 일차세계대전을 거쳐 절대강자로 등극한 이래로, 국제무대에서 각국의 위상은 미국과의 관계설정이 가장 큰 변수였다.  이를 남녀 내지 인간관계로 풀어보면 재미있다.  미국 공무원 중 최고 명예직은 영국대사이고, 유사시에는 피차 무조건 올인 하니까, 영국은 미국의 본처 쯤 된다.  천재지변·자원고갈·세계대전 등 극한상황에 대비하여 마지막 보루로 아껴두는 캐나다는, 둘째부인이나 하나뿐인 여동생이다.  일본은?  전편의 설명처럼 부적절한 관계라면 똑 떨어지는 정부(情婦), 또는 비극으로 끝나는 초초 상 같은 기생첩(나비부인)이다. 

성적소수자를 인정하고 결혼 없는 동거를 합법화하는 선진국의 추세에 비하면 조금은 낡은 계산법으로 이들 관계를 분석해보자.  밋밋해도 역시 본처이니 남자에 대한 의리는 본처·첩·정부의 순서요, 간드러진 유혹과 교태는 그 역순이다.  치정으로 엮인 정부(情婦)는 언제라도 표변하여 남자를 할퀼 수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인구 1억의 나라가 10억의 나라를 삼키려고 2억의 선진국을 기습한 다음, 과거의 정(情)을 보아 침략을 기정사실화 해달라고 떼를 쓰다가, 무참한 응징을 받은 것이 태평양전쟁 아닌가.

 

   일제의 조선 합병에 도덕적인 책임과 남북 분단에 일말의 부채가 있는 미국은, 김일성 남침 즉시 파병을 결행하여, 3년 동안 수만 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은 역사가 있고, 스탈린의 국제 공산주의 팽창 억제, 그리고 미국 자신의 패권주의 등 중요한 팩터(factor)가 있긴 하지만, 해방 후 1961년까지 무려 31억 달러의 원조와 세계에 유례없는 60여 년간의 병력 주둔으로 한국을 도와준 역사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혈맹이라는 한 마디로 모자란, 극히 남성적인 우정의 형제관계(Brotherhood)다. 

어두운 담합의 역사와 번국(藩國)시대부터 터득한 회유의 기술로 매수(買收)를 일삼는 일본식 우정, 또 역사상 유일한 핵폭탄 희생 국가라는 미국의 죄의식이 뒤엉킨 미·일의 연결고리는, 슈퍼파워 중국의 대두로 더욱 강화된 의미가 있다.  사나이의 우정이 흔들려, 미국이 한국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반대로 미국이 한국·일본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애석하게도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4대강국에 에워싸이고 도발과 핵 공갈을 일삼는 망나니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아베는 언필칭 자주국방의 ‘보통국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걱정 없이 삼시세끼 잘 먹고 잘살겠다는 배부른 투정과 다르지 않다.  초강대국 미국이 선제공격을 할 때도 UN의 결의를 얻고 우방국과 연합군을 구성하는 과정을 밟지 않던가? 

 일본의 걱정이라면 20여년 누적된 경제 불황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 내지 불만 해소와, 지진·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의 불안에 대한 대비책일 뿐이다.  만기 출소한 흉악범에게 발찌를 채우듯, 침략의 전과 태문에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다짐받으려 할 뿐이다.  죄 많은 과거를 영광의 역사로 미화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국과 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다는 아베의 말은 지극히 옳다.  자민당 장기집권과 파벌주의 그리고 4년 임기를 채운 국회가 단 한번 뿐이라는 민주주의의 미개함과, 양성평등 수준이 낙후된 일본을, 여자대통령까지 배출한 한국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히틀러의 슈테텐 점령처럼 조선 침략의 제1보였던 독도를 두고, 소련과 사할린 문제나 중국과 센카쿠 문제에 결부하여 억지를 쓰는 속셈은 이해하지만, 얻을 것은 침략의 역사를 광고하는 역효과뿐임을 깨달아야한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