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8 (월)

  • 맑음동두천 12.8℃
  • 맑음강릉 13.1℃
  • 맑음서울 12.0℃
  • 맑음대전 14.6℃
  • 맑음대구 16.1℃
  • 맑음울산 17.3℃
  • 연무광주 12.5℃
  • 연무부산 16.2℃
  • 맑음고창 13.2℃
  • 박무제주 14.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4.0℃
  • 맑음금산 14.6℃
  • 맑음강진군 15.1℃
  • 맑음경주시 17.3℃
  • 구름많음거제 15.9℃
기상청 제공

임철중 칼럼

병역특례 4 : 명품백과 백팩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06>

 


 

   인간은 직립보행 덕분에 지구의 패자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눈에 익은 인류의 진화과정은, 똑바로 설 때까지, 허리 펴기 운동의 매우 느린 슬로우 비디오였다.
 먼저 땅바닥에서 해방된 앞발이 손으로 진화하자, 엄지를 접어 연장을 쥐고, 양손이 협력하여 정교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둘째 인지능력 향상이다.  두 눈이 감시탑처럼 높아지니까 외적이나 먹이의 포착능력이 향상된다.  셋째 운반능력이 늘었다.
  들고 메고 등에 지며 머리에 인다.  보자기와 괴나리봇짐이 채반과 고리짝으로 바뀌는 동안, 서양에서 들여온 형형색색의 가방이 수하물계를 평정하였다.  그 중에 등에 메는 배낭은, 등산처럼 험한 기후나 지형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넷째 글 쓰고 악기를 다루며 각종 스포츠 등 문화의 발달도 손의 사용 덕분이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욕망은, 귀하게 얻은 두 손을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악용한다.  무기를 들어 침략과 억압의 군대를 양성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상대방도 무장을 하여, 인명살상무기의 가공할 확장경쟁이 시작되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왜 명품 백에 열광하는가?  옷맵시에 둔감한 실전용의 남자 평상복에는 주머니가 주렁주렁하다.  오히려 신변잡화가 많고 다양한 여성 의상에는 수납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몸매를 깎아내리는 백팩, 배낭은 더 싫다.  머리와 의상에 어울리고 돋보이는 손가방(Handbag)을 찾는다.  남자는 서류 등을 임시 보관한다는 의미로, Brief 또는 Dispatch case다.  다른 해석도 있다.  여성은 수태를 위하여 몸가짐이 조신하고, 임신 중 뱃속의 태아를 조심조심 지키려는(Carry) 전통과 본능으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려고 앞에 안거나 옆구리에 끼는 핸드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연장을 쓰는 남자들, 특히 무기를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군인에게, 배낭은 필수다.  비옷 텐트 모포 삽에 개인화기까지, 완전군장의 무게는 40Kg이 넘는다.
 엄혹한 독일군 병영에서, 라디오로 듣던 노래 ‘릴리 말렌’은 큰 위안이었고, 독일군·연합군 모두가 따라 불렀다.  주연 디트리히가 부른 영화주제가 4절을 본다.     “추운 진흙길을 행군하자면/ 무거운 배낭이 견딜 수 없어도/ 당신을 떠올리면 새 힘이 솟아/ 몸은 따뜻하고 배낭은 가벼워...”  운(韻)도 아름답다.  “...mud & cold/ ...more than I can hold/ ...renews my might/ ...I’m warm again/ ...my pack is light.”  탱크가 밀려오고 포탄이 작렬하며, 값진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스러지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어이없는 부조리(Absurdity)...  1초 뒤를 짐작할 수 없어도,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을 꽃 같은 젊은이들...  그들은 꼭 지켜야 할 무형의(Intangible) 무엇이 있었기에 광기 속에서도 꿋꿋했고,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과 추모로 보답할 무형(Immaterial)의 빚이 있는 것이다.  최고의 의료진이 일하는 150개의 대형 보훈병원과 1400여개의 클리닉에서, 한 해 830만의 제대군인을 돌보고, 미군의 유해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는 미국을 배워야 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옛날에 사둔 S사 배낭을 찾아 등에 메었다.  사나이에게 진짜 명품은 백팩이다.  진료실에서 굽은 등과 쳐진 어깨가 조금씩 펴져 제법 ‘당당한 직립동물의 자세’가 나오고, 군의후보생 훈련을 받던 진해 시절이 떠오른다.  국립대전현충원의 보훈둘레길을 걷다가, 호국철도기념관에서 두 손을 모아 묵념을 한다.
 1950년 7월 19일, 이원역에서 출발하여 사지(死地)에 다름 아닌 대전역까지 달리는 기관차에서, 36 명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당한 외압이나 침략에 굴하지 않고, 때로는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일어서는 용기는, 인간에게 직립을 허용하실 때 신이 기대했던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