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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맨발의 청춘 II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91>


 

   영화 ‘맨발의 청춘’은 한국판 ‘젊은이의 양지’였다.  라스트 신은 허름한 리어카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은 거적때기 밖으로 삐죽 삐져나온 신성일의 맨발.
 땅이 꺼지는 좌절감, 방향 모를 분노,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도전의욕 등등...   문득 재킷 그림만 보고 벅의 CD 한 장을 사게 된 사연을 엮은 칼럼(1997)의 한 대목이다.  며칠 전 영원한 청춘스타 신성일씨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한국영화계에는 신파의 끝물 김진규와 최무룡, 그리고 이미  몸매가 팡 퍼진 신영균 아재의 사극(史劇) 밖에 없었다.  청춘남녀들은 세련된 외국영화에 비해 왠지 유치한 한국영화 상영관에 들어가기를 망설였고, 고무신 부대만으로 객석을 채우자니 영화계는 배가 고팠다.  ‘맨발의 청춘’으로 젊은 남녀가 극장에 오기 시작했으니, 한국 영화계에 ‘스타’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신성일이 “슈퍼스타가 있는, 당당하게 두발로 선 한국영화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영원한 청춘스타인 까닭이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 개발연대의 속내를, 당시의 주연들로부터 직접 보고 듣는 기록이었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열 쪽을 넘기기도 전에 ‘과장과 가짜(fake)’ 냄새가 폴폴 나는 분식(粉飾)성 회고록들이 ‘전하는 말씀(Second hand news)’이라면, 이들 기록은 진정성이 묻어나는 현대사 주역들의 생생한 육성이었다.  북괴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낸 백선엽 장군, 오늘날 2천만 서울인구의 삶의 터전을 설계한 고건 시장, 중화학공업의 쌀인 쇳물의 물고를 튼 박태준 회장, 설명이 필요 없는 JP...  이처럼 기라성 같은 거인의 반열에 신성일이 함께하였다(2011년 4월에 시작, 127회).  이야기에 영양가가 풍부하고 누구보다 솔직담백하였다.  당시 대전고·광주일고와 함께 한수 이남의 3대 명문 경북고를 나오고, 서울대학에 연거푸 낙방한 사정에서 엄앵란과의 부부지연, 박태준 회장에서 앙드레 김에 이르기까지 교유한 폭넓은 인맥, 조영남·손시향·4 클로버스(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유주용)와의 인연과 직설적인 인물평, 짧은 기간 영욕으로 점철된 정치외도(外道)마저 꾸밈없이 풀어놓았다.  때로는 너무 솔직한 고백이 일부 여성 독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열독률(熱讀率)은 계속 정상급이었다.

 

   솔직히 그의 연기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다소 인색할 수밖에 없다.  모든 영화가 후시(後時)녹음으로 성우의 목소리이던 당시니까 대사는 그렇다고 쳐도, 연기의 기초가 부실하고, 유난히 꺼들거리는 몸짓은 타고난 오만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불량해보였다.  더구나 주연만 507편이라는 다작으로 시간에 쫓겨, 배역에 몰입하고 촬영 전 연기를 다듬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리라.  물론 미남미녀가 연기로 인정받기는 어렵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이런 단점들은 오히려 인기를 부채질하였다.  어색한 연기는 주연다운 개성 즉 변별력으로 작용하고, 불량 끼는 출구를 찾아 헤매던 청소년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였다.
 체크무늬 노타이에 청바지는 안성맞춤이었다.  1800년대 후반 골드러시 때 광부의 작업복, 포장마차에서 막 뜯어낸 듯 거칠고 투박한 무명 바지는, 히피와 펑크시대에 턱시도의 정장을 비웃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 깃발이었다.  폐암으로 81세를 일기로 영면하기까지 그는 청바지를 입었고, 청바지처럼 질기고 투박하게, 아프고 괴로운 내색 없이 의연하였다.  청바지를 함께 입은 한 살 위 트위스트김과 함께, 한 세월 우리 젊은이의 문화를 이끌었다.  ‘맨발의 청춘’ 끝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며 리어카를 끌고 가던 동지도 트위스트 김이었다.  우리 생애에 당신이 있어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