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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얼라들은 가라 2 : 약장수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83>


   가슴에는 장구를 등에는 북을 메고 걸음마다 둥둥, “왔어요, 왔어요, 둥둥 북 구리무가 왔어요!” 외치던 거리의 명물이 있었다.  얼마 지나니까 원숭이 한 마리까지 가세하여 관중을 모아놓고, “벌떡 벌떡, 남자들 기운에 좋아!”하는 보약으로 바뀐다.  동네사람 모여드는데 영양가 있는(팔아줄) 어른은 손에 꼽을 정도요, 코 흘리게들 만 쪼그려 앉아 있어, 질펀한 외설을 늘어놓기도 민망하다.  그래서 마이크는 외친다, “가라가라, 얼라들은 가라!”  가판 화장품은 국민소득 100달러 때 얘기, 수상한 보약은 천 달러 대 시절이다.  5공 당시 피스톨 강(12·12 행동대장? 사실 아님)으로 오해받은 초선의원 강창희는 말끝마다 외쳤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소득 5천 달러는 되어야 합니다.”  쉽게 풀은 JP의 ‘항산에 항심’이다.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5학급 통틀어 가장 작고 어렸다.  부반장을 해도 통솔 불가능으로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5학년 때(1953) 이승만 대통령 지시라며  ‘자치회’가 생겨 회장을 맡았다.  선거로 뽑고 논리로 설득하는 자치회는 덩치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아장아장 민주주의의 첫걸음을 떼었다.


   반만년 동안 민주의 ‘민’자도 모르던 우리 백성은, 미군정 3년과 80%의 문맹을 배려한 작대기 투표로 뽑은 이 대통령 2년까지, 도합 5년이 민주주의 체험의 전부인 채로 전쟁에 내몰렸다.  전시동원 체제는 많은 민주적 장치의 작동을 유보시킨다.  영구독재집권을 위하여 인권을 말살하고 다수국민을 숙청하려던 김일성 남침은 미군의 개입으로 막았지만, 종전 아닌 휴전이라는 전시체제하에서 정상적인 ‘민주교육’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피를 흘린 서구 민주주의의 수백 년 역사에 비하면, 무(無)에서 시작하여 단 15년 만에 자유당 독재를 무너뜨린 4·19의거는 ‘민주화혁명’의 기적이었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전쟁 중에도 대학생 징집을 늦추고 민주교육에 올인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이 컸다.

 자발적으로 일어선 학생들을 대견해하며, 혁명을 인정하고 순순히 하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 간 치열한 대치상황과 기반이 붕괴된 세계 최빈국(最貧國) 경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사실은 퇴화한 천황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력이 없는 국민수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앞날에는 빨간불이 들어왔고 쿠데타에 빌미를 제공하였다.  장기집권을 정당화하려는 군사정권은 경제개발에 올인하였고, 이렇게 민주주의의 양대 축인 교육과 경제발전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은 공존해온 동전의 양면이었다.  소위 보수는 반공이념을 방패삼아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70년 집권에 안주해왔고, 진보는 18세기 서구가 발명한 ‘민족주의(Nationalism의 일본식 번역)’를 도구삼아 국민 감성을 파고들었다.  두 세력 모두 국민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얼라들의 분리주의’를 먹고 탄생·성장하였다.  더욱이 보수는 웰빙과 자만 속에서 세계적인 트랜드 ‘정당의 종말(Party is Over)’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진보는 시작부터 국경 없는 코민테른의 이념과는 정 반대인 자폐적 사이비 민족주의를 이용하면서, 평행선의 폭은 날로 더 벌어졌다.  불통을 욕하다가 입장이 바뀌니까 더 심한 먹통으로 돌변하는 현상은, 둘 다 똑 같다는 증거다.  샴쌍둥이처럼 분리 불가능한 민주화와 산업화를 억지로 떼 내어, 약장수 논리로 삿대질해가며 번갈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원초적 거악(巨惡)인 평양정권의 존재였다.  그러므로 해결의 첫걸음은 피차에 서로가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약장수의 속임수로는 안 된다. 

 북의 눈치를 보며 그 비위에 맞춰 국정을 운영한다면, 우리국민의 삶은 김정은이 직할(直轄)하는 북한주민보다 훨씬 더 비참해질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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