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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미 투(美 鬪) 2 : 만인보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68>


   짓궂은 사육사가 침팬지에게 자위행위를 가르쳤더니, 한 번 쥐면 놓지를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석 달 만에 죽었단다.  믿거나 말거나하는 얘기지만, 다큐 ‘동물의 왕국’에는 짝짓기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컷들이 약방에 감초 격이다.

 맹수는 수정도 어려워 수사자는 하루에 수십 번 사정을 하고, 성질 급한 호랑이는 체구 작은 암컷을 물어 죽이기도 한단다.  이처럼 DNA를 남기려는 수컷의 눈물겹고 필사적인 투혼이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동물은 일찌감치 멸종했으리라.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르고 조잡한 곤봉을 든 원시인이 나오는 미국만화가 있었다.  몽둥이는 본래 사냥용인데, 여자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킨 뒤 끌고 와 짝짓기 할 때도 쓴다.

 비록 만화다운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강한 남자만 DNA를 남기고 근친교배도 예방하는 일석이조, 약탈혼(掠奪婚)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여 밀집생활 하는 사회가 되자, 인간은 도덕과 질서를 학습하고, 세상이 평등해지자 드디어 힘없는 짚신도 짝을 찾는다.  그러나 잠복했던 수컷의 공격본능은 애써 훈련한 자제력을 뚫고, 가끔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통제(도덕·질서)를 벗어난 수컷의 공격성은, 힘이 사회적인 서열로 대체된 세상에서, 성폭행 사고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처럼, 보통남자들의 우발적인 사고는 그리 흔하거나 상습적이지 않아, 예방과 통제 또는 치유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소위 ‘찌질이’들이 음습하게 저지르는 사고다.  원시시대라면 감히 경쟁대열에 끼어들지도 못했을 열성(劣性) DNA들이, 좋은 세월 만나 운 좋게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면 문제가 아주 달라진다. 

 체격이나 용모를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함은 천벌을 받을 일이지만, 최근 문제가 된 연극계나 문학계의 대표적인 상습범들은, 시쳇말로 “줘도 안 먹을 관상”이다. 

 심리학적으로 콤플렉스가 클수록 저지르는 일탈행위는 더욱 집요하고 음습하며 도착적이라고 한다.  그런 인물이 어느 분야에서 리더로 옹립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과대망상증(Megalomania)을 보인다.  무소불위의 상감마마, ‘폭군’이 되어 거칠 것 없이 권력을 휘두르면, 당하는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다.  한국의 ‘미 투’는 권력에 취하기 쉬운 검찰로부터 터지지 않았던가?


   ‘나만 옳을까?’의 2, 3편 부제(副題)는 ‘부음 난(訃音 欄)’과 ‘노벨문학상’으로, 일부 내용을 보자.  “잘 쓴 30권의 방대한 부음 집을 소개한다.  시인 고은이 25년에 걸쳐 쓴 ‘만인보’다.  시집이라기에는 좀 그렇고...”  필자는 바로 이 대목이 두 칼럼의 게재가 늦어진 이유라고 짐작한다.  감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분의 대 서사시를 이렇게 폄하하다니... 

 만인보를 읽은 뜻은 시를 보려함이 아니라, 반골 참여시인은 70년대 인물들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했을 따름으로, 아직도 대여섯 권은 버리지 않고 남아있다.  신문 부고 난에 실린 기사나 인명록 프로필에 한두 줄 소감을 보태 쓴 글들로서,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문장과 거기서 거기인데, 시(詩)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시인을 기려 도서관에 ‘만인의 방’을 만든 서울시는 무엇이며, ‘관계요로의 협조(?)’ 끝에 노벨상이라도 탔더라면 피차 또 무슨 망신인가?  그러나 노벨상 심사위원은 그리 만만치 않아, 정치색은 몰라도 인간성은 본다.  짧은 시상 취지문은 그 자체로 명문이다.  예를 들어 1954년 헤밍웨이는 “서술기법의 완벽함(for his Mastery of the Art of Narrative)”이 요점이다.

 김용택 시인이라면, 시 ‘눈 감아라’에서 “한국인 고유의 미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라 쓰겠지만, 고은에게는 해줄 말이 없다.  아직도 “부끄러운 행동 한 적 없다”는 말은 수치심을 상실했다는 자백인가?  “여기, 추접에 추잡하나 추가요.”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