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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옛 동산에 올라 4 : 후기 (Epilogue)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01>

 

    드라마 ‘응답하라 88’ 최종회(20)의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에 마지막 멘트는, “응답하라, 나의 쌍 8년도, 내 그리운 날이여!”다.  1988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격의 한 해였다.  그러나 필자세대의 쌍 8년은 단기(檀紀) 4288년 즉 1955년이다. 

 그 해에 UNKRA (UN 한국재건 단)가 문 닫고 정부에 부흥부(復興部)가 발족하였다.  내 발로 일어선 이때가 개발연대기(年代記) 시발점으로 삼기에 딱 좋은 해 아닌가? 

 허허벌판 폐허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던 역동의 시절을 지나면서, 누가 좀 철 지난 얘기를 하면, “야, 지금이 쌍 8년도인 줄 알아?” 면박을 주는 것이 유행어였다.

 단기 88년에 홀로서기 시작하여 서기 88년 민주화의 첫걸음에 맞춰 세계올림픽을 주최했으니, 과연 세대차는 물론 표현의 차이까지 느끼게 해준 33년의 세월이었다. 

 복고주의의 복고라면 restore·revive·react·recover 등 다양한 동사가 있는데, 정치나 유행패션이 아니라 “그 시절 추억에 잠기기”와 비슷한 말은, 20%쯤 부족한대로 relive다.  좋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장점이나, 현실도피로 흐른다면 독이 된다.  

 사회와 담쌓고 화려한 과거 속에 살아가는 왕년의 스타 노마처럼(Gloria Swanson: 선셋 대로 1950)...   미국 영화연구소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명화 중 하나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지만, 우리는 이를 “나만의 특별한 소명으로 착각한” 대통령 덕분에 반만 년 만의 경제 환란(IMF)을 겪은 경험이 있다.  명리학(命理學)은 사주를 주역으로 풀어 앞날을 점친다.  5, 60년대 박 사주와 유 관상쟁이이가 집안에 드나드셨는데, 두 분 점괘가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맹인이 문자 점을 치는데 걸인이 점칠 복(卜)자를 짚었더니, “예끼, 거지가 무슨 점을 본다고!” 호통을 친다.  이어 어사 박문수가 똑같은 글자를 고르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넙죽 절하며,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한다.  풀어 왈, 깡통을 차면 거지요 마패 차면 어사란다.  역사(史料)·周易·관상·문자 등 어느 도구를 동원해도, 결국은 직관(直觀: Intuition)으로 보고, 예언이란 “꿈보다 해몽”이라는 얘기다. 

 소과의 되새김질(反芻)은 빈약한 풀에서 최대한 영양분을 취하자는 뜻이요, 바둑의 복기는 같은 실수를 피하고 더 나은 신수를 찾는 노력이듯이, 역사 공부 역시 실수 없이 잘 읽어 최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영화(榮華)에 매몰되면, 나태·무기력·현실도피로 흐르고, 기껏해야 현실안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응팔’과 ‘오빠생각’은 과거로의 여행(Back to the Future)이요, 그리운 시절 애틋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주는 쉼표와 치유의 시간이다.  그러나 솔루션을 제시하지는 않고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생각의 전환을 위한 힌트는 있다.

 응팔 마지막 회까지 반복해서 배경에 흐르는 ‘걱정 말아요, 그대’의 노랫말이 묵직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는,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낸 우리 자신에 대한 ‘Ode’ 요, 한 편의 ‘절명 시’다.  이 구절을 세 번 반복하고 나서,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다.     라커 전인권이 선택한 마무리는 다 함께 희망의 미래를 설계하자는 절규였다.

 ‘오빠생각’에서 울컥했던 두 장면을 덧붙인다.  첫째는 어른만 만나면 두 손을 내밀고, “안아줘!”하는 어린 계집아이...  필자도 초등 때 두 눈으로 보았고, 당시 고아원마다 한 명 씩은 꼭 있던, 핏덩이 때 부모 잃은 스킨십의 영양실조 소녀다.  

 둘째는 포탄을 분해하는 아이들...  초3 때 같은 반 남모군은 수류탄을 해체하다가 두 눈과 다섯 손가락을 잃었다.  마음씨 고운 교사와 결혼하여, 문창동 집으로 초대받아 20년 만에 추억을 나누었는데, 그 후로는 내내 소식이 감감하다.

 

                                        

윤동주 정병욱 매천야록의 절명시  어느덧 후배들이 남기고 싶은 얘기를 묻는 연배(年輩)가 되었나보다.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로부터 아쉽게 사라질지 모를 얘기 까지, 들려주거나 글로 남겨 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다.  그때 마다 꼭 재확인하고 싶은 사연이 많은데 정작 물어볼 어른들이 가셨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칼럼을 쓸 때 옛 이야기, 또는 젊은 시절 우리가 느꼈던 감상 같은 소재에 먼저 마음이 가는 이유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