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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말장난 2 : 강제노동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73>

 

   전두환 신군부가 사회악 일소라는 미명 아래 서슬 퍼렇던 공포통치 시절.  조폭의 상징인 문신(紋身)은 발각되면 (목욕탕·골프장 샤워 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는 검거대상이었다.  깍두기 머리의 젊은이가 피부과 의원에 찾아왔다.  거시기에 ‘AIDS’ 네 글자가 선명하다. “지우는 데에 수술비가 (한 글자에  5만원씩) 20만원이요.”  잠시 후 준비하던 간호사가 원장실에 뛰어 온다. “원장님 계산이 틀렸어요.  소독하려고 닦는데, 주름이 펴지니까 두 글자가 더 있어요.”  스포츠 용품회사 ADIDAS 직원이라던가?  이 회사는 최근 불명예퇴진 한 FIFA 블라터 총재에게 거액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탔다.  ‘LE CAF’라는 브랜드도 있다.  Citius·Altius·Fortius, 즉 올림픽 정신을 표현하는 “더 빨리·더 높이·더 힘차게”라는 세 단어의 머리글자를 모은 이름으로 소비자 심리를 사로잡았다.  

 이처럼 명품일수록 이름값을 지키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정도가 아니라, 억만금의 손익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어원(語源)이 보통명사 이름으로 쓰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복고 즉 고(古)악기 연주가 유행 중이다.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으면, 여리고 짧은 음의 청아한 멜로디가, 원초적 모태적인 감정의 세계로 인도하는 힐링의 기쁨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나 연주회용으로는 소리가 작고 표현에 한계가 있어, 18세기 초 크리스토포리 등이 뜯지 않고 두드리는 해머와 패달 등을 전면 개량 한다.

 음의 지속시간과 울림의 조절이 가능해지고 특히 강약이 뚜렷하여, piano-forte(여리게-힘차게)라는 이름의 연주회 악기로 진화하였다.  보다 강한 음을 내는 악기 이름을 줄여서 부르면서, 강하게(forte)가 아니라 여리게(piano)가 된 것도 재미있다. 

 이후 피아노는 자유로운 표현을 극대화한 베토벤의 작곡과 연주를 통하여 악기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SF 영화의 고전이 된 Star Wars에서, 내공으로 단련된 무형의 기(氣)를 Force 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힘차게·강하게·강제로”의 의미를 갖는 Forte와 Force의 어원이 같은지도 모르겠다.  

 

   근세 역사에서 ‘탈아입구(脫亞入毆)’는, 일본 선각자들이 근대화를 부르짖던 구호로는 훌륭하지만, 판단력이 짧은 사람에게는 서구문명 선망의 콤플렉스(열등감)가 될 수도 있다.  일본 집권세력이 조상의 자랑스러운(?) 산업혁명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진 반인류적 만행 즉 식민지 국민의 강제노동 사실만 쏙 빼 놓으려고 꼼수를(조선 合倂 이전까지로 年代를 限定) 부리다가, 우리 정부의 항의로 본색이 드러났다.  사태가 엉뚱하게 돌아가자, ‘징용’이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며, ‘강제노동’은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징용이 합법이면 나치의 유태인수용소도 나치 실정법 하에서 합법이다.  후미오 외무상은 조선인 노역자들이 강제노동(forced labour)을 당한 것이 아니고, “Forced to work 즉 노역을 하게 되었다”라며 어거지도 썼다.  “일을 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하타라카 사레타 라는 受動形 표현).”라는 것이다.  앞쪽의 forced는 노동을 수식하는 ‘강제의’라는 과거분사 형용사이고, 뒤의 forced 는 to 부정사로 연결되는 ‘강제당하다’라는 동사다.  Work 와 Labour는 한글과 한자(漢字)의 차이일 뿐 똑같이 ‘노동’을 뜻한다. 

 따라서 두 어귀는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같은 말이니, 본색은 그대로 둔 채 문신만 지우려는 야쿠자처럼, 나쁜 수동형의 엉터리 단어풀이요 말장난에 불과하다.  혹시 말장난이 아니라면 실제로 그들의 어학실력이 무학(無學) 수준에 불과한 탓일까?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