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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표절과 반칙 2 : 효리의 경우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71>

 

   소녀시대는 삼촌부대를 동원해가며 신선한 리듬과 상큼 발랄한 율동으로 한류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음악만이 갖는 마력 hook-song으로 마치 튀김 속 트랜스지방처럼 귀에 착착 감기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선 우리의 자랑이다. 

 f(x)의 새침 떼기 크리스탈이 뜨고 애프터스쿨의 꿀벅지 유이가 아슬아슬하더니, 우후죽순으로 뒤따르는 걸 그룹들이 저마다 떠보겠다고 난전을 벌이고 있다.  스트립댄스의 외설적인 성애동작(bump & grind)에서 이제는 자위행위를 연상시키는 쩍벌춤 경지에 이르러, 때로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개그는 사회의 거울이요 고발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비 호감의 사내 둘이서 외설댄스의 극치를 보이는 “니글니글”은 걸 그룹의 “위글위글”을 패러디하여, 지나친 선정성을 은근하게 고발하고 있다. 

 맛이 간 기름이 그러하듯 너무 느끼하여 속이 부글거린다는 뜻 아닌가.

 

   쩍벌춤의 원조격인 이효리씨는 과연 지적이고 영리하다.  춤도 “Basic Instint”의 셰런 스톤처럼 눈 깜빡 할 사이에 재치 있게 넘겼지만, 연전에 표절시비가 터지자 그 많은 투자와 공을 들여 준비한 새 앨범 출반을 싹싹하게 접었다.  제주도에서 반 은퇴 신혼생활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수많은 후배들에게 착한 롤 모델이 되어준 것에 박수를 보낸다. 

 표절 하면 글보다는 음악, 그 중에도 대중음악이요, 다시 노랫말이 있는 가요가 두드러진다.  일본의 엔카나 한국의 전통가요(뽕짝)처럼 형식이 단순하게 고정되고 대량생산하는 장르에서 더욱 심하다.  일본의 고 미소라 히바리는 생애에 200곡쯤을 남겼는데, 우리 이미자씨는 2천곡이 넘는다.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는 고유한 국민음악과 가요를 갖고 있어서, 프랑스 샹송 이탈이라의 칸초네 포르투갈에 파두가 있으며, 슈베르트의 독일에는 수준 높은 리트(lied)가 있다. 

 우리나라는 비록 신음악의 역사는 짧으나, 한(恨)과 흥(신명)의 나라답게 아름답고 그윽한 가곡의 천국이다.  노랫말 자체로 한편 한편이 모두 시어(詩語)요, 바이올린 독주만으로도 이만큼 가슴을 파고드는 가곡은 다른 나라에서 예가 드물다.  사우·봉선화·가고파·그 집 앞·그네·바위고개·봄 처녀·봄이 오면·비목·향수·두고 온 금강산...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숨이 가쁜 주옥같은 명곡이 즐비하다.

 

   우리 가곡 중에 인기 1위는 단연 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의 ‘얼굴’이란다. 

 배우기도 부르기도 쉽고 동요·대중가요·가곡의 어느 장르에도 어울릴 천의 얼굴을 가진 명곡이지만,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작곡자가 교사회의 시간에 만들어 날짜까지 똑똑히 기억한다는데(1967. 3. 2.), 중학교 시절 대전극장 스피커에서 많이 듣던 흑백영화 ‘장미의 문신’ 주제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으로 1955년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 이 명화의 음악감독은 커티스·줄리아드·모스크바음악원을 나온 노스(Alex North)다.  주제가 도입부부터 리듬도 닮았고, 마지막 여덟 마디, “She'll go on caring ..... the rose tattoo.”의 멜로디는 ‘얼굴’과 똑같아서, 흔한 종결부(coda) 유사성의 한계를 넘는다.  치열한 노력의 결과를 쉽게 베끼면 반칙이다.  원로의 기념비적 작품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근대화의 지각생으로서 대한민국 1세 개척자들은 변변한 스승도 없이 가시밭길을 헤매었다.  뒤늦게 터져 나오는 미숙함에 너무 기죽거나 남의 탓하기에 앞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바로잡아가자.  신경숙의 전설도 신귀복의 얼굴도 싹싹하게 한 획만 긋고 넘어가자. 

 파출소에 훈방이 법정에는 정상참작이 판결 후에도 사면이 있다.  반칙으로만 몰아세우기에는 너무나 숨 가빴던 우리의 역사가 아니었나.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