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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표절이라는 반칙 1 : 하필이면 유키오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70>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하였고, 사마천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농경사회에 들어서 수명이 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역사의 탄생” 덕분에 인간의 지능은 폭발적으로 성장, 문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어른을 흉내 내면서 말을 배우고 글을 읽으며 작문을 익혔다면, 표절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다분히 있다.

 또한 문장의 표현과 서술(narrrative), 작곡의 악상(樂想)이 우연히 같을 수도 있다. 

 제목은 잊었지만 007 이언 플레밍의 말을 인용한다. 처음 한 번은 우발적(happenstance)이요 두 번은 우연의 일치(coincidence)일지 몰라도, 세 번째는 고의적인 음모(enemy action)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장에서 여섯 단어가 같거나 노래 멜로디에 네 마디가 같으면 표절이라는 기계적인 기준을 떠나서, 행위에 전과가 있거나 상습적이라면 표절의 낙인을 피해갈 수가 없다.

 

   장터 약장수로부터 천변 백사장의 곡마단(서커스)에 이르기까지 손님을 모으는 데에는 원숭이 재롱이 감초였다.  로마제국의 원형경기장에서도 스타의 몸값은 제몫을 톡톡히 하였고, 코트의 악동 나스타세의 전통은 “신사 스포츠”라는 말이 무색하게 괴성을 지르는 사라포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본시장보다도 규모가 큰 도박(betting)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한국에서, 스타가 없는 프로스포츠는 살아남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영화계는 티킷파워를 가진 스타를 아끼고, 문학계는 돈 되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깨진 똥 단지처럼 감싼다. 

 이응준 작가의 문제제기로 비롯된 “신경숙 작가 표절사건”도 출판계 메이저들의 이런 관행이 낳은 상업주의의 비극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 우익의 우상으로 “천황제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1925-1970)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憂國 1983 김후란 譯)’과, 1996 신경숙의 ‘전설’중 문제된 문장은 그냥 닮은 것이 아니라, “보다 세련된 번역”이다.

 본인이 부인하고 출판사 창비(創作과 比評)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일이 커지자, 일본의 일부 언론사와 네티즌들은 아주 신이 났다.  속 좁은 자들은 심지어, “잘못을 인정 않는 한국 국민성”이라며 싸잡아 “사돈 남 말을” 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를 계기로 해외에서도 주가가 치솟던 한국문학 전체가 졸지에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광우병과 세월 호와 메르스에 미숙했던 정부처럼, 표절문제에 대한 신 작가나 창비의 초기대응은 최악이었다.  “무심결에 써내려갔으나, 지적을 받고 보니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한다. 당분간 자숙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다.”라고 털어놓고, 출판사도 적절하게 처리를 했다면, 문제는 잠잠해지고 문단에 매우 긍정적인 쇄신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에 밝힌 선인들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모방과 표절의 경계가 애매하고, 고래로 로렌스의 “차탈레이 부인” 등 젊고 건강한 남녀의 성애 묘사는 산더미처럼 많으며, 시가 아닌 산문에서 전체 흐름에 관계없는 한 문장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다만 표현이 매우 매력적·파괴적이며(impact), 신 작가에 대한 표절시비가 처음이 아니라고 하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반칙’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발과 입건절차를 밟은 이상, 문제해결을 위한 작가·출판사의 한 단계 높은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은 필수요, 이어서 이응준·현택수씨가 앞장서고 원로들이 연명하여 성명을 발표한 뒤, 검찰에 진정하여 해피엔드로 끝내는 것이 정답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