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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음악의 사육제 : 금난새의 신 개념 음악극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64>

 

   엘가(E. Elgar 1857-1934)의 모음곡 ‘수수께끼 변주곡’은, 표제음악(programme)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나의 모티프가 변주와 전개를 반복하며 점차로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반 클래식에 비하여, 곡마다 독립적이고  난해한 현대음악의 선율 탓이었나 보다.  14 곡 모두가 지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라서 개성이 강하고, 모든 캐릭터를 숨겨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는 배경을 알고부터, 이 곡이 사랑 받는 이유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다.  작년에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창단 30주년 기념으로 연주한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49)의 모음곡 ‘돈키호테’는, 금노상 지휘자가 15분쯤 해설을 곁들여 객석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때 쓴 공연리뷰 일부를 소개한다. “주연(主演)인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는, 13 토막의 대사 없는 오페레타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만약에 사전 해설이 없었더라면 객석이 절반쯤은 졸지 않았을까.

 

   가정의 달 5월에 금난새(유라시안 필하모닉 CEO)씨가 지휘하는 대전아트오케스트라(DAO)의 ‘Carnival of Music' 공연이 있었다.  생상스(C. Saint-Saens 1835-1921)의 소 편성 관현악을 위한 14개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를 해설 중심으로 재편성한 ‘음악극’이었다.  동물의 왕 사자의 카리스마는 저음의 피치카토로, 등장을 알리는 팡파르를 트럼펫 아닌 피아노로 하여, 시작부터 곡의 코믹한 성격을 예고한다. 

 오펜바흐의 경쾌한 캉캉 춤 리듬이 초 저속 버전으로 거북이를 묘사하여 미소를 자아낸다.  일곱 번째 수족관은 물고기 떼의 헤엄을 현악기로, 물의 출렁임은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로, 물방울 소리는 실로폰으로 묘사하여, 예술로 승화된 한 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상큼했다.  열두 번 째 화석은 모찰트의 연습곡과 롯시니의 아리아에 피겨 퀸 김연아가 생각나는 ‘죽음의 무도’를 동원하고, 마림바로 뼈 부딪치는 소리를 표현한다.  마지막 백조는 첼로가, 물속의 분주한 발놀림은 피아노가 맡았다.  독주용으로도 사랑받는 이 곡에 이어 드디어 피날레다.  생상스 자신은 자·타의 여러 작품을 짜깁기 한 이 작품에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초연 후에 쏟아진 예상 밖의 호평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스트 피아니스트의 서울예고 연지형과 서울대 윤정현은, 뛰어난 솜씨로 갈채를 받았다.  대전 출신 게스트 일호는 소프라노 한예진.  타의에 의하여 한국오페라단 감독의 꿈을 접은 뒤에 ‘아픔 뒤의 성숙’을 그림처럼 보여주었다.  더욱 풍부해진 성량과 성실한 톤으로 여유 있게 부른 베르디의 ‘운명의 힘’ 중 “파체, 파체(평화)!”는, 그 노랫말마저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휘자도 마음이 움직인 듯, 협연을 굳게 약속하였다. 

 다음 성모초등을 나온 바리톤의 조병주도 새로운 보석의 발견이었다.  바리톤에서 종종 보이는 ‘호통 발성’도 아니고, 저음이 길게 뻗지 못하는 ‘하의실종’도 없으며, 부담 없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성량의 극한을 보여주지 못한 점만은 아쉽다. 

 

   클라리넷·플롯·마림바 독주의 타이밍도 절묘하고, 영화의 롱테이크 같은 흐름으로 예정시간을 30분 넘기도록 집중력의 상실이 없었다.  아마도 구한말 선교사의 어눌함과 어린이의 천진함이 어우러진 금난새 식 화법(語套)과 알 찬 내공의 승리라고 본다.  피치카토폴카의 앙코르까지 부드러운 지휘와 조용한 DAO 악단(창단 13년)의 찰떡궁합이었다.  지방 음악인과 민영 오케스트라에 성원을 부탁하고, 마지막 연주자가 무대를 떠날 때까지 단상에 남아 박수를 유도하는 자세 또한, 객석에 가르침을 주는 따뜻한 공연이었다.  “클래식은 룰을 알고 즐기는 야구게임과 같다.”

 저서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의 한 구절이다.  문화소비의 사이클이 매우 짧아진 현대의 젊은이들을 객석으로 다시 불러들일 클래식의 ‘선봉장’다운 멘트다.  끝으로 대전시향의 ‘친절한 금노상씨’는 바로 금난새씨의 동생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