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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입법 청원 1 : 야미 로비(闇 lobby)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62>

 

   로마 공화정의 호민관(護民官: tribune)은 평민의 권리를 옹호하기위하여 정무관의 직무와 원로원 결의에 거부권을 갖는 임기 1년의 직위다.  그래서 신문사 이름에 즐겨 쓰인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가 그 권한을 빼앗아 행사하였다.  집정관·정무관이 오늘날 사정의 칼을 쥔 행정부라면, 평민회 선출직인 호민관은 국회의원 성격이 짙다.  다르다면 로마는 입법권이 귀족 원로원에 있고, 호민관은 2-10 인의 소수였다는 점이다. 

원로원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행정부 견제기능과 입법권을 함께 쥔 국회의원의 힘은 막강하다.  기업경영에 재미를 본 고 성완종 회장이 정치에 집착한 이유를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예컨대 관급공사처럼 건설업자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독점하면, 경쟁자 간에 형평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내가 하면 로비가 남이 하면 로브(rob)다.  미국 영국 등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로비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직업의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 역시 그 숫자를 크게 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백 년 전에는 몇 백에 불과하던 직업이 몇 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료계를 보자.  조선조에는 의원(醫員) 하나로 족하던 것이, 치과의사·한의사를 빼고도 내·외과에서 가정의학과까지 수십 개의 전문과로도 모자라, 다시 각 과마다 여러 세부전공이 파생하였다.  의녀(醫女)로 시작하여 간호사·간호조무사·구강위생사가 있고, 간호사도 분야별로 수술실·마취·중환자실이 다르며, 감마나이프나 로봇수술처럼 첨단의료기기를 다루는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보조 인력도 검사·측정·촬영으로부터 재활·물리치료에 이르기까지 전문화하고, 심마니·텃밭재배·건재약국에 의존하던 약물(藥物) 또한 수많은 제약회사와 의료기 메이커로 대체되었으며, 약국·제약회사와 병원근무 약사들이 전문직업군(群)으로서 의약계의 중요한 축을 구성한다. 

모두가 고도의 독자적 전문성을 지닌 채 상호 연계·의존하는 제조·서비스업의 콤플렉스를 형성하므로, 그 전문성 때문에 행정·입법기관이 격변하는 각 분야의 정확한 흐름과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전문직업인 단체인 협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한 장면.  동네 닭 집을 열면서 간판업자에게 옥호(屋號)까지 부탁한다.  어슷비슷한 업종이니까 좀 더 튀는 이름을 찾던 중 반짝, ‘그 분이’ 오신다.  ‘후다 닭 집’이다.  ‘닭’은 글자가 굵고 색깔도 빨갛다. “후다닥 배달합니다.”라는 뜻이다. 

광고는 자신의 실체나 능력을 알리는 수단이다.  넓은 의미에서 면접 때 자기소개서나 제안 설명서 또는 프로젝트 설명회 같은 PT 도 일종의 광고다.  결과에 따라 고용·계약이 성사되고 매출이 늘어난다.  주제가 풀기 힘든 문제점이라면 법을 만들어야하므로 입법청원을 위한 PT 즉 설명회가 필요한데, 대화의 장이 공식화·상설화 되어있지 않으니까 연줄을 찾게 된다.  천문학적인 경제규모에 직종과 기업이 다양할수록 ‘연줄’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로비가 불법인 까닭에 자연히 ‘음습한 채널’을 찾아 야미 로비가 되는 것이다. 

은밀한 검은 돈은 시민단체를 회유하고, 광고주 ‘갑’으로서 ‘을’인 언론의 힘까지 빌려 무차별 공격하니까, 협회처럼 모든 것을 공개해야하는 공식단체는 수세에 몰린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두 개의 축, 국회와 언론이 함께 휘청거리는 것이다.  전 현직 협회장이 겪는 UD 사태 후유증을 보면서, “정부는 합법적인 로비를 허(許)하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이유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