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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숨고르기 1: ‘거품의 미학’과 칼국수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8>

 

   새 밀레니엄 전야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절박감에 쫓겨 총회를 불과 3주 앞두고, 협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1999).  동반 연임을 원한 협회장과 의장에게는 실례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난히 당선, 상처투성이일지언정 ‘치과전문의제도’안을 통과시킨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  의장에 취임하자 바로 그해 10월 종합학술대회에서 전 회원에게 나누어 드릴 세 번 째 칼럼 집 ‘거품의 미학’8천부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가급적 자제해왔던“치과인 끼리 주고받을 이야기”30여 편을 우정 넣었다.  이제는 공개토론도 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뜻이었다.

 물론‘치과의료 문화상’수상에 대한(1998. 4. 25) 감사와 보은의 뜻도 있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글을 쓴다.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 말미를 장식할 ‘마침표’가 아쉬웠다.  마침 대전은 새 천년을 맞아 낙후된 동부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역사(驛舍) 밑으로 관통도로를 뚫는 대역사(役事)를 진행 중이었다.  평생 낯익었던 역 광장이 천지개벽을 하니, 사라질 풍경에 추억의 일화를 곁들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바람 찬 흥남부두’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못지않은 한 많은 사연들을 다 풀어내지는 못해도, 6·25 전쟁이 할퀴고 간 깊은 상처가 아무는 현장의 잔상을, 열흘 남짓한 시간에 일곱 꼭지의 짧은 수필로 옮겼다.  영화 ‘국제시장’과 오버랩 되는 장면이 많은데, ‘우동국물’은 어렵던 그 시절 대전 칼국수가 전국에 유명해진 사연이고, ‘왓샤 부대’는 시민의 난방을 도맡았던 대전역 ‘석탄 도둑’ 이름이며, ‘대전블루스’는 생이별의 아픔을 다독여주던 추억의 허스키(안정애: 1959) 얘기다.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때 “못 다한 이야기”가 다시 아쉬워져, 몇 꼭지 더 풀어보려 한다.

 

   대전역을 나와 오른 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리우데자네이루의 까미니또 골목처럼 폭 4 미터짜리 길-다란 칼 토막 상가를 만난다.  6·25 때 집중폭격을 맞은 폐허에 들어선 판잣집을 정리하면서, 이리저리 칼질을 당한 부동산이다.  길 건너 첫 집이 ‘역전 가락국수’이고, 옆에 ‘왕만두와 찐빵타운’이 붙어있다.  1950년대 대전역 가락국수 맛을 지금껏 지켜온 거의 유일한 곳이다.  2인용 식탁 다섯 개가 묘하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타협을 했는데, 좁은 평수에 10명이 앉기에는 조금 벅차 보인다.

 추억의 가락국수는 오른 가격이 3,500원, 소금에 찍어먹는 삶은 계란 두 개를 추가해 둘이 8천원이면 족하다.  두어 골목 안에 ‘신도칼국수’가 있다.  창업자(1961) 김상분 할머니 사진 밑으로, 세숫대야 같은 폭 27cm의 알미늄으로부터 현재의 아담 사이즈 스텐리스까지 국수그릇 네 개가 걸려있고, 처음 30원에서 4천원까지 값이 적혀있다.  국수 반 국물 반으로 허기를 때우던 양푼국수가 사골육수·멸치다시에 들깨가루가 뻑뻑한 웰빙 국수로 진화한 역사와, 80년대 중반까지 30배 이상 값이 뛴 인플레와 경제발전의 기록이다. 

삼남의 물류중심이던 대전역 인근에 대한통운 등 트럭 운송업 ‘정기화물’까지 밀집하자 하역·택배 인력이 달렸고, 자연스럽게 서민 상대의 밥집·칼국수집이 몰렸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물류가 뚝 떨어지고 신도심이 개발되니 하나 둘 문을 닫아, 이제 역전 옥·미미·왕관(콩나물밥)식당 등이 선산(先山?)을 지키고, 대흥·선화동까지 진출했던 대선·청양 칼국수와 진로 집이 맥을 이어, 토박이한테는 추억을, 젊은이와 여행객에게는 달인의 맛을 착한 가격에 서비스한다.  신도심으로 이주한 대선·신도 칼국수 분점(?)은, 시민의 미각을 선도하며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순례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고, 구도심의 오리지널은 마치 종갓집처럼, 어렵던 시절 대전광역시의 역사와 유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