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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문화는 생활 5: 족집게의 촉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7>

 

   대전예술의전당 개관이래(2003) 후원회장을 맡아 가끔 공연리뷰를 쓰게 되었다.

 많지 않은 글 중에 세 번 이상 나온 분들은, 한국 창작춤 단체 창무회를 창단하고 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김매자씨와 플루티스트 재스민(최나경)양, 그리고 소프라노 한예진씨다.  필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 세 분을 리뷰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김매자: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에서 택견 권법까지 변화무쌍이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동작이 정연한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시킨다.

 관객석 뒤에서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2003 아트홀 심청)  아크로배틱 매스게임처럼 정밀(精密)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군무(群舞)는, 심청전·얼음 강·불이문(不二門)을 거치며 향상일로인 김매자 브랜드에 영락없다.  3·4부는 비 내리는 비래리로부터 우슬현을 감싸 도는 세 내(대전천·갑천·유등천)를 표현, 마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루어 대해로 흘러나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훌륭한 ‘표제무용’을 연출한다.
(2009 아트홀  대전블루스 0시 50분)

 

   재스민 최: 날카로운 고음의 카코포니에서 목젖의 울림 같은 튜바의 저음까지 다양한 음색...  청아한 대금, 서글픈 안데스의 팬 플룻, 여운 깊은 호른이나 모범생 클라리넷 음색도 튀어나온다.  재스민은 비르투오소의 목표를 넘어, 플롯 자체의 한계와 새로운 진화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07 금호 아트홀 독주회)  

 바이올린 소나타를 별다른 편곡 없이 연주해낸 프랭크.  네 현과 보잉의 민첩성을 따를 수야 없지만, 독주악기로서 플롯의 외연을 넓히려는 재스민의 의지와 능력을 읽는다.  플롯의 발상지는 동양이요, 윤이상의 ‘가락’이 현대음악처럼 신비롭고 난해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첫 연주라는 이 곡에서 그녀는 마치 마술을 시연하듯, 자유자재의 주법을 선보였다.  반만년 ‘피리민족’의 내공(內功)이다.  ‘마술피리’로 불리는 그날까지 그녀의 정진을 기대한다. (2010 앙상블홀 독주회)

 

   한예진: 초청무대 첫 곡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재발견되어 안드레아 보첼리의 테너로 친숙해진 곡이다.  풍부한 성량과 넘치는 제스처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귀기를 느꼈다.  청아한 보첼리와 달리 성가(聖歌)를 들으며 요부를 연상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백미는 앙코르곡 ‘이파네마 아가씨’...  성대에 우퍼를 장착한 듯 저음에서도 꽉 찬 성량이 색소폰과 잘 어울린 독창적인 재즈였다.*  단순한 크로스오버를 넘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낸 한씨는, 청순가련형(ingenue)보다 남자를 뇌쇄하는(femme fatale) 배역에, 170이 넘는 키와 선 굵은 마스크 등 체격조건까지 갖추었다. 

 올가을 국립오페라단 살로메에서 열창을 기대하며, 세계적인 multi-talented diva로 성장을 기대한다.  (2008. 3월 앙상블홀)  프리마돈나 한예진은 차고 넘치는 Diva이지만, 작년의 토스카나 라보엠보다, 발성의 응집력과 뻗는 힘이 더욱 무르익었다.

 (2013 대전예당 기획 아이다)  2008년 가을 한국에서 처음 공연된 살로메(예당)에서 어렵고 체력부담이 큰 역할을 무난히 소화하며 한 단계 올라섰고, 2011년에는 Julia Migenes를 넘어서는 관능적인 춤을 곁들여, 카르멘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재능과 44세 젊음에 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 직을 베팅한 극히 미래창조적인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비엔나 심포니 수석을 거쳐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재스민과, 2013년 “아름다운 무용인 상”에 이어 지난 달 제1회 “한성준 예술상”을 받은 동갑내기 만년소녀(1943년 생) 김매자씨 등, 세 분에게 빠져든 필자의 ‘족집게’ 같은(?) ‘촉’에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 '이파네마 아가씨'는 프랑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보사노바 곡이다.
* 2월 25일, 한예진 씨가 음악감독 직을 사퇴했다는 소식이다. 애석한 일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