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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문화는 생활 3: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5>

 

   1950년 6월 김일성의 남침으로 농사까지 망쳐 온 국민이 가난에 허덕이고, 어딜 가나 시장형편은 부산과 비슷하였다.  대전은 양키시장으로 시작하여, 몇 번의 화재와 신축을 거쳐 도매시장, 다시 중앙시장이 되었다.  서울은 이름이 자유 대도 남대문시장 등이었는데, 안쪽에 미제물건을 파는 도깨비시장이 있고, 건너편 양동 골목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넣고 끓인 꿀꿀이죽이 푸짐했다. 

가게에 단칸방이 딸린 판자 집은 다닥다닥 붙었고 지붕은 타르 먹인 루핑에 호롱불과 석유곤로 일색이니 사흘이 멀다 하고 불이 났다.  시장에 불이 난 다음에는 불같이 일어난다하여 은행에서 돈을 잘 빌려주었고 상인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식량은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로 밀가루와 분유와 불면 날아갈듯 한 안남미요, 기름은 미군부대 뒷문으로, 석탄은 기차역에서 역시 비공식으로 유통되었다.  전후(戰後) 10여년을 GNP $100 미만의 최빈국으로 ‘국가재건’에 매달렸던 시절이다.

 

   북한은 달랐다.  장개석과 국공(國共) 내전 중 김일성의 도움을 받은 모택동은, 전세가 북한에 불리해지자 즉각 파병을 결정, 북한 내 중공군이 최대 120만 명에 이르렀다.  휴전 후 원조 $10억에 1956년까지 50만 병력이, 노동력으로 전후복구를 도왔다.  이 액수는 2차 대전 후 미국이 마셜플랜을 통하여 유럽제국에 제공한 원조 총액과 같다.  십년 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관계정상화를 걸고 일본에서 받아낸 청구권자금이 유·무상 합하여 불과 5억불이었다. 

미국은 고집불통 이승만과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독주를 경계하여, 식량과 소비재는 주되, 산업시설이나 군비강화에는 극히 인색하였다.  결국 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경제와 군사력에서 남한을 앞섰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대사에서 외국차관을 이자까지 꼬박꼬박 다 갚은 유일한 나라요, 금 모으기를 통한 IMF체제 조기졸업도 같은 민족적 문화유산이었다.  이렇게 내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 독일 광부와 간호사 등 인력송출의 눈물겨운 사연이 이어졌다.

 월남파병과 중동 토목공사현장에서, 절대빈곤을 벗어나 2세들에게는 이런 고생을 시키지 말자는 결기가, 작고 깡마른 육신에 초인적인 힘을 불어넣었다.  잠시 쉴 짬도 아쉬운 하루살이 인생에, 전쟁 통에 헤어진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챙길 겨를이 있었겠는가?  1983년 KBS 안국정 PD가 기획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두 시간짜리 1회용 이벤트는, 10만 명이 참여한 138일의 생방송으로 이어진다.

 애써 외면하고 참고 눌러왔던 그리움에 북받친 10,189명 눈물의 재회장면은, 대한민국의 존재감과 1천만 이산가족의 기이한 비극을 세계에 알린 계기요, 훗날 영화 ‘국제시장’에서 눈물  바다를 이룬 클라이맥스의 씨앗이었다.

 

   이 장기 레이스의 배경음악은 곽순옥이 부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의 황제 한운사 노랫말에 박춘석 작곡인 ‘남과 북’ 주제가다.   분단으로 헤어진 은아(엄앵란)를 찾아 목숨을 걸고 귀순한 인민군 소좌 장일구(신영균).  대한민국 이대위(최무룡)의 아내가 된 은아의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그랬댔구나, 그랬댔구나.” 탄식을 멈추지 못한다.  “나는 죽어야 해요.” 울부짖는 은아를 달래 보내고, 가져온 정보를 털어놓은 다음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투신한다. 

“이산가족” 다음 해 김기 감독이 다시 만든 ‘남과 북’과 패티 김의 노래는, 1965년 원작의 감성을 따를 수 없다.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잊고 있던 우리의 “공동언어요 문화유산”이기에, 영화‘국제시장’이 탄생하고 온 국민이 깊은 감동에 빠져든 것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