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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문화는 생활 2: 세 개의 신화와 ‘국제시장’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4>

 

   1950년 11월, 동부전선의 유엔군 10군단 3만여 병력은(사령관 아몬드) 그 존재도 몰랐던 중공군 제9병단 15만의 기습으로 전멸의 위기에 빠졌다.  특히 주력부대의 하나인 미 해병 1사단은(스미스 소장: 12,000), 중공군 7개 사단(12만)이 포위한 약 40km의 장진호협곡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로 병사 절반 이상이 동상을 입은 채, 14일간 악전고투를 거쳐 탈출에 성공 한다 (전사 2,500, 실종 200, 부상 5,000).

 중공군 제9병단도 그 뒤로 4개월 간 전투에 복귀하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전쟁의 흐름이 바뀌었다.  1983년, 당시 살아남은 전우들이 모여 ‘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미군이 쓰던 일본지도에 장진이 일본발음 초신으로 되어 있고, “Chosen Few 하면 선택된 소수”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과 탐 크루즈의 영화 “A Few Good Men"도 여기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흥남에 집결한 미 3, 7사단과 국군 제1군단 등 도합 105,000, 그것도 대부분 총상·동상에 시달리는 부상병들을, 적의 추격 속에서 장비와 함께 철수시키는 일은 큰일이었다.  필수차량만 17,500대에 피난민 91,000명은 어떻게 하나.  시급히 재활-재편성하여, 방어에 투입할 병력 철수에만 매달려도 벅찬데, 통솔도 힘든 민간인이라니. 

“저 사람들 두고 가면 총살당합니다.  국군은 걸어서 후퇴할 테니. 저들을 태우시요”라고 강청한 김백일 사단장, 세브란스 의전출신 현봉학통역과 군수참모 포니 대령의 설득으로 아몬드소장이 결단을 내린다.  전투력이 최우선인 사령관으로서, 북한이나 중공군이라면 진급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걸어야 할 어려운 결심이었다. 

두고 올 군수물자 폭파에 쓰인 다이너마이트가 400톤, 시 이름을 익산으로 바꿀 만큼 피해가 막대했던 이리 역 폭발사고 40톤의 열배다(1977. 11. 11.).  환자용 수액은 운동장에서 불도저로 깔아버렸다.  12월 24일 마지막으로 출발한 화물선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세월호 크기로(7,600톤), 정원 60명의 230배가 넘는 피난민 14,000을 태우고, 사흘 뒤 사상자 한 사람 없이 거제도에 도착하는 기적을 보였다.
 그동안 배 안에서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장진호전투는 독일과 소련이 싸운 스탈린그라드전투(1942. 8. - 43. 2.)와 더불어 세계 2대 동계전투로 기록된다.  흥남철수는 영불연합군의 덩커크 철수작전과 함께 세계 2대 철수작전이었다.  덩커크는(1940. 5. 26 - 6. 4.) 35만 병력 중 5만 탈출을 기대했으나, 어선들까지 나서서 338,226명이 탈출한다.  물론 1개 사단은 후방엄호 작전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흥남은 무엇보다도 “십만 피난민의 무사 철수”라는 전무후무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점이 자랑이다.  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작전(1950. 11. 26)으로 시작,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무려 세 개 의 신화 탄생한 것이다.  전시 통계는 들쭉날쭉하지만, 당시 남북한 2천만 인구 중에 피난민 5,817,000명으로 남한인구가 크게 늘었고, 60만이 살던 부산에 2,173,000이 몰린 것을 보면, 짧은 시일에 국민의 뇌리에 새겨진 공산치하의 악몽이 얼마나 가공했는지 짐작이 간다. 

코너에 몰린 부산에서, 연고도 기술도 없는 피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막일과 노점상이요, 팔 것은 피난길에 들고 온 귀중품과 의류, 밀수품 아니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부정 물품이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광복동 자유시장이 국제시장으로 발전하면서,  현인의 국민가요“굳세어라 금순아”가 탄생한다. 

“굳세어라”는 6·25가 낳은 최고의 문화상품이요, 이 노래가 어려운 시절 “위로와 분노조절과 힐링”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뒤늦게 영화‘국제시장’의 성공이 웅변해주고 있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